프랑스와 이탈리아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장편소설이 나란히 번역출간됐다. 파트릭 모디아노(54)의 '아득한 기억의 저편'(자작나무 펴냄)과 알베르토 베빌라콰(65)의 '에로스'(미래M&B 펴냄).
78년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로 공쿠르상을 수상한 모디아노가 지난 95년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출간한 '아득한 기억의 저편'은 30년전 젊은 날을 되돌아보며 쓴 자전적 소설이다. 독일 시인 스테판 게오르게의 시 '망각의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를 인용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젊은 날의 방황과 일탈, 사랑과 도피의 추억에 대한 기록이다.
주인공인 중년의 소설가 '나'는 30년전 젊은 날 길거리에서 쟈클린을 처음 만나 파리의 허름한 호텔과 대학가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던 시절에 대해 회상한다. 마요르카섬으로의 여행을 꿈꾸던 두 사람은 치과의사의 돈을 훔쳐 런던으로 도망간다. 런던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여인은 아무 말없이 사라진다. 작가는 아득하게 멀어져간 젊은 날과 스치듯 지나간 사랑의 기억을 담담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후 파리에서의 재회, 또 14년후의 지하철에서의 우연한 만남. 하지만 이후 더이상 그녀의 소식은 듣지 못했다.
모디아노는 소설에서 언제나 과거를 이야기한다. 이 소설도 얼핏 한 여인과의 애틋한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재생해 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젊은 시절 '나'를 고통스럽게 만든 일상의 권태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했던 도피에의 욕구와 그 도피가 지닌 의미에 주목하고 있다. 과거의 자신을 되찾고 싶은 작가의 독백인 것이다'에로스'는 94년 이탈리아에서 발표돼 이듬해 '보카치오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 '데카메론'이 추구했던 고전적 의미의 에로스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성찰로 읽힌다. 에로스가 어떻게 생겨나고 성숙되며 표현되는지, 왜 변형되고 실종되어 가는지에 대한 철학적인 사유와 그 일화를 담은 39가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소설인가 하면 수필이고, 자전(自傳)인가 하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끼어들고, 순박한 고향사람들의 이야기인가 하면 대도시의 여인숙 풍경이 요지경처럼 펼쳐지고, 행위의 서술인가 하면 이론적 해설이 끼어들고, 아름답고 밝은 얘기인가 하고 보면 어둡고 암울한 이야기들. 심지어 현대판 귀족사회의 성적 타락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이야기들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작가의 고향인 파르마를 중심으로한 이탈리아 북부지방 사람들의 성에 대한 관념과 풍속도가 반영된 이야기들은 인간에게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문제인 에로스에 진지하게 다가서도록 해준다.
徐琮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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