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야기-3)화장실

입력 1999-07-20 14:00:00

주택의 용도를 대별하면, 일상생활공간인 거실과 조리하고 먹는 공간인 부엌, 휴식공간인 치실, 배설공간인 화장실 이렇게 네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이 네가지 용도 중에 화장실을 가장 소홀히 취급해 왔다.

화장실을 강원도· 전라도에서는 칙간, 함경도에서는 정낭, 제주도· 전라도· 경상도에서는 통시· 통싯간· 뒷간이라고 불러왔다. 다솔사에서 유래된 해우소(解憂所)라는 말이 있는데 근심을 해결해 주는 장소라는 뜻이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해우소는 이층으로 되어 있어 아래층에는 낙엽짚 등을 깔아두고 분뇨가 쌓이면 바로 밭으로 끌어내어 거름으로 사용했으니 수질을 오염시키지 않은, 자연의 윤회방법이다.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는 해우소는 송광사· 선암사· 김룡사· 대승사· 동화사 비로암· 서산 개심사· 홍천 수타사· 삼척 영은사· 영월 보덕사 등 현존 해우소는 몇 채 밖에 남아 있지 않다.

우리 속담에 '뒷간과 사돈집은 멀어야 한다''뒷간 갈 적 맘 다르고 올 적 맘 다르다''뒷간 기둥이 물방아간 기둥 더럽힌다'등 뒷간이 들어간 속담들이 많다.화장실은 똥오줌(糞尿)을 처리하는 곳이다. 똥(糞)은 쌀(米)이 달라진(異) 것이고, 오줌(尿)은 죽은(尸) 물(水)이다. 아무리 이렇더라도 몇시간 전에는 입으로 맛있게 들어간 음식이 아닌가. 더럽다고 소홀히 취급해서는 안될 일이다. 화장실에서 일생동안 보내는 시간이 2, 3년이나 된다고 하니 화장실을 안락하고 고급스럽게 위생적으로 꾸밀 때가 왔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찾는 곳이고, 퇴근하자마자 손발 씻는 곳이 화장실이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로 출근해서 곧바로 찾는 곳, 점심시간후 양치질 하는 곳, 퇴근시 탈의 및 화장하는 장소로 사용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니 회사의 화장실은 넓고 깨끗해야 한다. 위치도 어둡고 구석진 곳이 아니라 밝고 편리한 곳에 둘 일이다. 오늘날 화장실은 기업의 얼굴로 판단될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주식을 살 때는 그 회사의 화장실을 보고 사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루소는 지병인 방광염 때문에 화장실을 오래 사용하면서 사색에 잠기다 그 유명한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생각해 냈고, 마틴 루터는 신의 계시를 변기 위에서 받고 '구원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라는 말을 했다던가?

중국에서는 옛부터 측상(厠上:화장실)을 명상의 장소로 이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때는 청자로 된 요강을, 조선시대는 백자요강을, 조선 이후로는 청동요강을 사용하다가 일제때 군수물자로 공출까지 바친 적이 있다. 그 당시는 혼수필수품으로 놋요강· 놋대야를 가지고 갔다. 놋요강의 소리는 유교시대 여인들이 잠든 영감 깨우는 데는 더할나위 없는 명기였다. 요사이 일본에서는 물을 절약하는 아이디어로 물소리 내는 기계를 발명하여 여성들이 용변보면서 사용한다고 한다. 옛날 궁중에서는 매화틀을 사용했다는데 임금님 똥을 매화라 불렀으니 우리 선조님들의 멋은 세계에서 으뜸이다. 양반가정은 칙간밑에 여물을 썰어 깔았고 일반서민은 뒷간바닥을 파거나 독을 묻어 거름으로 사용했었다. 제주도에는 똥돼지가 있었는데 그 육질이 최고라서 지금도 이런 방식으로 기르고 있는 모양이다.

유럽에서는 첨단 공중 유료화장실이 있는데 동전을 투입하면 문이 열리고 점등이 되면서 향기가 나오고 음악이 흐르며, 용변을 다 보고 나면 냄새를 없애는 소취제가 뿌려지고 문이 닫히면서 소등되며 벽과 바닥은 고압 수세식으로 청소가 된단다.

우리나라 공중화장실은 그야말로 '으악!'이다. 지난번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이 하회마을에 왔을때 나는 화장실 걱정만 했다. 전통 통시를 사용했다면 아마도 생애 최대 최고의 경험(?)이었으리라. 여왕과 통싯간. 극과 극의 멋진 조화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

아무튼 오늘날의 주거 계획에서 화장실의 비중은 날로 커지고 있다. 급탕· 배수· 배기 등 화장실 관련 설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부엌이 차지하는 비중 못지 않다. 하자도 화장실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다. 생활수준이 높아질수록 주거공간에서 화장실 수가 많아지고 있어 공사비 증가 뿐만 아니라 에너지 소비도 늘고 있다. 그 원인은 달라진 식생활문화 때문이다. 섬유식(채식)을 많이 하던 옛날에는 뒷간 하나만 있어도 열식구가 충분했다. 그런데 요즘은 네식구가 두개의 화장실이 모자랄 정도이다. 하물며 18평 아파트에도 화장실이 두곳이란다.

건강을 위해서, 쾌적한 주거문화를 위해서 에너지 절약과 절수를 위해서, 식생활을 섬유식으로 개선해야할 때가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임 팔 암(건축가· 동인건축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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