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장하지 않은 신창원 실제의 얼굴은 과연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었다. 그가 드디어 체포되어 텔레비전 수상기에 모습을 드러냈다. 막상 그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그런 흉악범들의 모습에서 상투적으로 느끼게 되는 괴리감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강도살인을 저지르고 무기수로 판결 받아 복역중이던 흉악범에 있을 법한 표면적인 징후들을 손쉽게 감지 할 수 없었다.
철통 같기로 정평이 나 있는 교도소의 경비망을 충분히 비웃을 수 있었던 담대함과 흐트러진 적이 없었던 탈출의 집념, 결코 짧았다고 볼 수 없는 도피와 잠적 기간중에 보여주었던 그 신출귀몰함. 포위망을 따돌리고 도주할 때마다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던 또 다른 범죄의 대담무쌍한 흔적들. 그리고 일단 작정했다 하면 실패한 적이 없어 보이는 절묘한 여성 편력. 그리고 고개 숙인 남자들에겐 가히 혁명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은닉과 수효. 홍길동을 방불케 하는 그의 도피 행각은, 우리들에게 긴장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었다.
그가 반드시 체포되어야 한다는 국가적이고 사회적인 공감대의 일탈은 있을 수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그에게 희미한 연민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그가 부유층의 집만 골라 털어 서민층들이 갖고 있는 박탈감을 간파하고 있는 듯한 행동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어쨌든 수상기에 나타난 그의 용모와 입성은 우리들이 상상력으로 예측하고 있었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얼굴이 천성적으로 험상궂게 태어나 꽃밭 앞에 서 있어도 흉포한 범죄형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거나, 애써 변장한 흔적도 없는 그야말로 샌님같이 얌전하고 곱상한 용모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과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처럼 야단스런 꽃무늬 셔츠는 사람을 대면했을 때, 얼굴보다 오히려 셔츠에 눈길이 머물만도 했다. 앞머리를 조금 길렀을 뿐, 본래 얼굴을 감춰보려 했었던 노력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것에서 그의 가공스런 대담성이 엿보인다. 구태어 변장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변장을 구사한 것인지도 모른다. 필경 변장했으리라는 일반적인 통념을 뒤집어버린 것이었다.
그의 체포 과정에 나타난 정경 중에서 한 가지 인상이 남는 것이 있다. 그 아파트의 거실 탁자 아래 몸을 숨긴 채 부산하게 오가는 수사관들과 취재기자들의 거동을 두려운 시선으로 살피곤 하던 하얀 푸들 강아지의 깜찍스런 패션이었다. 오른 쪽 귀를 노란색으로 살짝 염색한 것은 동거녀의 미적 감각을 짐작하게 한다. 그 강아지의 두려운 시선이 온갖 부정과 비리가 난무하고 있는 요즈음의 세태를 바라보는 서민들의 눈만 같아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체포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 신고자의 탁월한 눈썰미는 또한 우리를 감탄케 한다. 신혼부부가 살고 있는 방에 결혼사진이 없었다는 것을 발견한다는 것은 사소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예민한 식별력을 갖지 못한 사람에겐 좀처럼 발견할 수 없는 모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지나쳐선 안될 또 한가지가 있다. 사회 일각에서 그를 영웅시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 것은 구린 돈이 있는 집을 털었다는 것에 연유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구린 돈이든 향기나는 돈이든 남의 것을 위협으로 강탈했고, 그전에는 살인까지 저지르고 무기수로 복역중이던 범죄자였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구린 돈을 가진 사람을 징벌할 수 있는 권한과 기능을 가진 수사기관이 엄연하고 그들의 역할이 하나씩 사회정의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것도 망각해선 안될 일이다.사회정의를 범죄자의 역할에 맡겨두고 있는 사회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어째서 그에게 연민을 갖고 있는 것일까. 그것을 정치하는 사람들은 저린 가슴으로 생각해야 할 문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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