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돌아가시기 며칠전에 잡숫고 싶어하던 자장면 냄새만 맡으면 아직도 목이 메어오고 구토 증세가 일어납니다"(여고 3년 ㄱ양)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인 형과 이모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내가 네살, 형이 초등학교 3학년일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얼마전 이모는 경부선 철도가 달리는 망우공원 곁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달리는 기차를 볼때마다 나도 저 기차처럼 엄마 아빠를 만나러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합니다…"(대구 동원중 ㅈ군)
'아동의 세기'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아동권리가 신장된 20세기가 그 끝자락을 보이고 있지만 98년말 현재 우리나라에는 아직 1만명에 가까운 소년소녀가장들이 외로운 삶을 살고 있다.
대구의 소년소녀가장은 274가구 431명(98년말 현재, 대구시 자료)으로 대부분 초·중·고교에 다니고 있지만 예민한 사춘기를 혼자서 보내야하는 이들의 경제적, 심리적, 신체적 어려움이 적지 않으리라는 추정이 어렵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의 대부분은 소년소녀가구들이 부모가 없이도 참으로 대견하게 자기들끼리 잘사는 것으로 여기며 그들의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저 소년소녀가구돕기 후원계좌에 가입하면 의무를 다한 것처럼 여기거나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외면, 소년소녀가구가 현행 가족제도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사실 소년소녀가구, 소년소녀가장이라는 용어가 존재하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우리나라 밖에 없다. 선진국이나 후진국 그 어느 나라도 한창 많은 도움을 필요로하는 소년소녀가장들이 그들끼리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국가 아니면 지역사회가 앞장서서 부모의 공백을 메꿀 수 있는 방법을 제도적으로 틔워놓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돌봐줄 할머니나 친인척조차 없이 순전히 소년소녀가장만 모여사는 비율은 20%대를 밑돌고 있다. 그러나 탈산업사회가 진전되고, 특히 IMF로 인한 가족해체 현상이 심화되면서 과거와는 달리 친모에게 버림받아 소년소녀가장이 되는 비율이 부쩍 높아지는 새로운 풍속도는 우려할 만하다.
부모가 다 사망하여 소년소녀가장이 되는 비율은 16.3%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부모가 다 살아있거나 부모 가운데 한사람이 살아있는 소년소녀가장들이다.
과거에는 부모가 안계시면 큰아버지, 작은 아버지, 이모, 고모, 삼촌 등 집안어른들이 앞장서서 거두어주었지만 최근들어 친인척 관계가 크게 약화되는 바람에 부양·보호를 기대하기란 어렵게 됐다.
이렇게 되다보니 언젠가 강원도에서 문제가 되었듯이 이웃집 나쁜 남자 등에 의한 성폭행의 위험도 무시할 수 없으며, 꼬박꼬박 들어오는 후원금으로 과소비로 흐르는 소년소녀가구들도 없지는 않다. 또 사는 곳은 영구임대나 친지네 방 월세 등이어서 거주지난(도표 참조)을 겪고 있다.
박정구 원대새마을금고이사장의 경우 소년소녀가장들이 모여 살도록 '꿈나무 집'(13가구 25명 거주)을 조성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 소년소녀가구들은 "생일이 되면 엄마가 그리워요""아파서 누워 있으면 부모님이 보고 싶어 저도 몰래 눈물이 흘러요"등으로 혈육의 정을 그리워하고 있어 부모역할을 대신할 따뜻한 가정은 참으로 필요하다.
소년소녀가장들은 어린시절에 찾아온 역경을 딛고 강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제도적인 뒷받침이나 부모의 대리 역할을 할 수 있는 보호막은 여전히 허술하기 그지없다.
미국의 유명한 아동학자 칸교수가 우리나라에 와서 소년소녀가구들이 저들끼리 살도록 태무심하게 버려두는 것을 보고는 "사회적인 아동유기현상"이라며 크게 지적한 적이 있다.
계명대 여성학대학원 김정자 사회복지학과교수는 "가족은 아동이 자라는 최상의 환경이다. 외국의 경우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어린이들끼리는 살게 하지 않는다. 소년소녀가장들이 사회·경제적 위험에 그대로 노출시킨채, 아무런 보호막도 없다. 지역사회가 앞장서서 건전한 가정으로 양육을 맡기든지, 수양부모에게 위탁하든지 해야한다"고 말한다.
한국복지재단 부설 대구종합사회복지관 한선희 과장은 우리나라도 내년부터 가정위탁제도나 그룹홈, 학교사회사업의 활성화 등을 통해서 소년소녀가장문제로 본격적으로 수용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들려준다.
〈崔美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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