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특유의 감각으로 문학속에 여성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페미니즘' '페미니즘 문학'은 20세기 후반에 크게 부각된 화두다.
굳이 페미니즘의 근원을 들출 필요도 없이 '페미니즘'이라는 용어가 생기기 훨씬 이전부터 문학을 통한 여성의 해방과 꿈, 권익을 실현시키고 높이려는 노력이 있었고 또 치열했다. 페미니즘 또는 여성주의는 그만큼 뿌리가 깊다. 지난 70년대 '여성학'이 국내에 도입되면서 서서히 발아한 우리나라에서의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은 80년대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를 빼고 현대 문학을 논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그러면 페미니즘 문학은 어디까지 왔는가. 20세기 문학에서 '페미니즘'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것은 현대 문학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임에 틀림없다. 페미니즘 문학의 위상은 60년대를 전후해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크게 높아졌고 논의도 활발해졌다. 정치·사회적인 시각이나 경제적, 제도적, 심리적 관점에서 봐도 페미니즘은 무시할 수 없는 흐름을 형성했다. 계급과 노동, 권력, 국가, 민족, 인종, 문화, 이데올로기 등 수많은 상황과 어울리고, 때로는 대립하며 발전해온 페미니즘은 그 속성만큼 쉽게 숙지지 않을 정도로 탄력성과 세력권을 확보한 것이다. 하지만 페미니즘 문학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페미니즘 문학이 여성들의 일상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어떤 작가가 페미니즘 문학을 이끌었으며 대표작이 어떤 것인지 딱 꼬집어 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페미니즘 문학과 결부시키기가 힘들지만 세계문학의 범주에서 가장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노벨문학상을 예로 들어보자. 20세기가 열리고 여성가운데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작가는 모두 9명. 스웨덴 소설가 셀마 라거로프가 1909년에 최초로 이 상을 받았다. 이어 소설가 그라찌아 데레다(이탈리아·26년), 소설가 시그리드 운셋(노르웨이·28년), 소설가 펄 벅(미국·38년), 시인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칠레·45년), 시인이자 극작가인 넬리 작스(독일·66년)가 수상했다. 반면 페미니즘 문학의 열기가 뜨거웠던 70, 80년대에는 오히려 여성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았다. 90년대 들어 제3세계와 소수인종쪽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남아공 소설가 나딘 고디머(91년)가 다시 물꼬를 틀었고, 미국 소설가 토니 모리슨이 흑인 최초로 노벨상을 안았다. 96년에는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가 월계관을 썼다.
이외 페미니즘 문학사를 쓴다면 어떤 작가가 기록될까. 일부에서 '페미니즘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하는 버지니아 울프나 프랑스의 저명한 여성작가 시몬 드 보부아르, 마그리트 뒤라스, 마그리트 유르스나르 등 많은 여성작가들이 입에 오르내릴 것이다. 70년대 남녀의 대립구도에서 벗어난 새로운 모성상을 제시한 작품을 발표해 당시 유럽 페미니즘운동의 방향을 바꾸게한 프랑스의 마리 까르디날도 그렇고 90년대 프랑스 페미니즘 문학의 대표주자인 아니 에르노, 최근 처음 추리소설을 발표한 불가리아의 줄리아 크리스테바도 여기에 끼일 수 있다. 또 캐나다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시인인 마거릿 애트우드, 중남미의 대표적인 여성작가인 이사벨 아옌데와 리우라 에스키빌 등도 손꼽을 수 있다. 국내 문단에서는 박경리, 박완서, 오정희, 최윤씨 등과 소위 90년대 여성문학시대를 연 30, 40대 젊은 여성작가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20세기 문학에서 초점을 맞춰야할 것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페미니즘 문학의 본령, 진정한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다. 이는 그동안 페미니즘 문학에 대해 많은 논란이 일었고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차가웠기 때문이다. 지난 96년 국내 문단과 여성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이문열씨의 소설 '선택'이 좋은 사례다.
'상업화에 물든 여성문학의 실체' '뿌리깊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폐습'과 같은 비판을 상대방에 쏟아내면서 작가들의 공방이 이어졌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평론가들은 '진정한 페미니즘 문학에 대한 반성이나 논의의 결핍과 페미니즘에 대한 서투른 접근 방식이 빚어낸 충돌'로 보고 있다. 순수한 의미의 페미니즘 문학이 일부 상품화의 도구로 기운 것도, 원인을 제공한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90년대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 논쟁이 불붙은데 대해 평론가들은 "70년대 마르크시즘에 입각한 사회의식과 정신분석학적 방법론이 결합하면서 페미니즘이 모든 문화영역에 타올랐다가 이제는 페미니즘문학이 따로 언급되지 않을 정도로 차분하게 가라 앉았다"고 지적한다. 21세기를 앞둔 페미니즘 문학의 현주소를 말해주고 있다. 지난 97년에 엮어낸 페미니즘 소설집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에서 문학평론가 하응백씨가 전개한 페미니즘 이론은 많은 것을 생각케한다.
"진정한 페미니즘 문학은 상반된 시각이 부딪치는 전투적 대결의 장이 아니라 여성의 모성적 가치와 남녀간의 화해와 사랑을 기반으로한 휴머니즘 문학"이다.
〈徐琮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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