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임시국회에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법안'이 상정된 것 같더니 또 연기되고 말았다. 시기 문제와 예우 방식에서 의견이 분분하다고 들었다. 205회 임시국회에서는 통과되기를 빌면서 시기 문제에 대한 견해를 개진해 둔다.
시기 또는 기간에 대한 의견을 보면 국민회의는 1969년 8월 7일 군사정권이 3선개헌을 발의한 날부터 국민회의가 집권한 1998년 2월 24일까지이고, 한나라당은 군사정권의 유신체제가 발동하기 시작한 1972년 10월 17일부터 6월항쟁에 의해 민주화가 선언된 1987년 6월 29일까지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먼저 지적할 것은 역사에 관한 문제는 정치판의 흥정으로 결말을 지어서 안된다는 점이다. 국회의원 본인들이 관여한 문제라고 해도, 본인들이 관여한 문제이기 때문에 더욱 전문적 진단 또는 객관적 평가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해방후의 한국현대사를 세분하면 1945~60년을 '해방후 혼동기'로, 1960~92년을 '민주화운동기'로 보고, 1993년부터 오늘날까지를 '민주주의 개혁기'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시기 구분에 대하여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1960년 4.19혁명부터를 민주화 운동기로 보는데 대하여는 공감하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화 운동자에 대한 예우를 하려면 4.19혁명을 뒤집은 5.16 쿠데타를 시기의 기점으로 잡아야할 것이다.
민주화 운동자에 대한 예우는 평상시의 '비(非)민주 현상'에 저항한 민주화 운동이 아니라 '반(反)민주체제'에 대한 저항을 의미하는 것이어야 한다. 평상시의 비민주적 현상이라는 것은 과거는 물론 현재의 김대중정권기에도 나타날 수 있는 개별적이고 산발적 현상을 말하고, 학원이나 노조운동 같은 것을 통하여 민주화 운동이 전개될 수 있으나 그러한 일상성 현상까지 포함할 수는 없다.
그러한 비민주주의에 저항한 것 까지 예우를 한다면 앞으로도 민주주의 개혁이 시행착오를 겪는 가운데 얼마든지 나올 수 있고, 아니라고 해도 비민주 현상은 사람에 따라 주관적으로 평가도 다를 것이기 때문에 실무에 혼란이 일어날 염려가 많다. 그래서 반민주 체제에 대한 저항운동으로 한정해야 한다.
반민주체제란 정권의 발생과 존재가 민주주의에 반대될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봉쇄하고 반민주 체제가 수립된, 우리의 경우는 군사정권기를 말한다. 따라서 군사정권에 대하여 저항한 '체제적 운동자'에 대하여 예우하는 것이어야 한다. 시기의 중요한 전제는 사회체제와 구조가 '반(反)민주'인 것이다.
그래서 4.19 혁명자에 대한 예우는 이미 마무리졌으니 새로 예우할 사람은 5.16 쿠데타에 저항한 사람부터로 보아야 한다. 쿠데타에 저항한 사람이 있느냐의 여부는 시기 설정과 별개의 문제다. 백번을 양보해서 보더라도 1964년 6.3항쟁부터는 민주화운동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6.3항쟁이 처음에는 한일회담 반대운동에서 출발하고 있으나 나중에는 군사정권 타도를 위한 민주화운동으로 전개되었다. 그런데 구태여 1969년의 3선개헌이나 1972년의 유신체제에 기점을 두자는 이유가 무엇인가? 대단히 불순하게 보인다.5.16 쿠데타와 한일회담을 거론하지 않으려는 얄팍한 잔재주로 보인다. 현재 공동정권이 갖는 고충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해와 진실은 다른 것이다. 결국 민주화를 위한 입법을 하고도 두고 두고 비판을 받을 어리석은 짓을 범하지 말기를 바란다.
〈국민대 명예교수.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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