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이 무렵의 나는 보름동안의 북한방문 일정 중에 있었다. 북한 전역에 흩어져 있는 문화 유적지를 답사하기 위한 그 여행은 내키지 않았더라도 지리적인 불가피성 때문에 북한의 동해안 항·포구와 해수욕장 몇 군데를 인접해서 지나칠 수 밖에 없었다.
평양에서 육로로 금강산을 찾아가는 동안 나는 만경봉호가 정박해 있던 원산항, 그리고 명사십리 해당화(붉은 해당화는 지금도 피어 있다)란 유행어로 우리들의 귀에 익숙한 원산 송도 해수욕장의 소나무 숲속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도 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동해안의 남쪽 해안도로를 따라 금강산이 바라보이는 온정리에 당도하는 동안, 나는 다시 장마비에 젖고 있는 몇 군데의 항·포구를 지나칠 수 있었다.
그리고 인적이라곤 별로 찾아볼 수 없었던 그 쓸쓸하고 고적한 포구들을 차창밖으로 내다 보면서, 언제 가보아도 갯내가 물씬하고 시끌벅적한 북새통을 이루는 남한의 항·포구 풍경들을 떠올렸다.
적어도 내가 바라 보았던 그날의 북한 땅 동해안 포구들에는 남한의 작은 포구에서도 빼곡하게 정박해 있는 통발 어선이니, 채낚기 어선이니, 저인망 어선이니, 외끌이 어선이니 하는 어선들을 흔하게 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온정리 금강산려관에서 체류했었던 나흘동안 식탁에 오르곤 했던 생선회 접시에 나는 얼른 젓가락을 가져가지 못하고 매우 착잡한 심경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옛날 어떤 소녀가 있었다. 밤 깊도록 공부에 열중하던 그녀는 문득 그 당시 회자되었던 '크라운 산도'라는 과자가 너무나 먹고 싶었다. 참을 수 없었던 소녀는 문을 열고 뒤뜰로 나가 허공을 쳐다보며 큰 소리로 크라운 산도를 연거퍼 불렀다. 집안의 가난이 그 과자를 사먹을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튿날,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그녀는 책상 위에 가득 쌓인 크라운 산도를 발견한다. 그러나 소녀는 한참 뒤에 아랫목에 항상 깔려 있던 담요가 사라진 것을 발견해야 했다.
어떤 의사의 수필집에서 읽은 대목이었지만, 그 때 식탁에 오른 회접시를 바라보는 심경은 바로 담요가 없어진 쓸쓸한 아랫목을 발견하는 기분이었다.
얼마전, 서해에서 남북간의 교전이 있었다. 수차에 걸쳐 남방한계선을 침범한 북한 함정들로부터 선제공격까지 당하자, 참다 못한 우리 해군함정들이 응사함으로써 빚어진 교전이었다.
예견치 못했던 파장을 일으킨 이 교전의 근본적인 시단은 꽃게잡이 때문이었다. 북한 함정들의 한계선 침범은 꽃게잡이 조업에 들어간 북한 어선들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남방한계선 침범이 우발적이었고, 만에 하나 도발의 의도가 없었고, 정치적 복선이 깔려 있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런 의구심조차 깡그리 걸러 내버린다면, 거기에 남는 것은 나 개인적으로는 연민이다.
우리의 꽃게잡이 어장은 전통적으로 동중국해와 양쯔(揚子)강 하구였다. 그러나 이 꽃게어장이 중국 어선들의 횡포로 접근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 해역에서 조업하던 우리 어선들은 이제 태안반도 해역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북한의 꽃게잡이도 한물때가 6월인 바로 그 시점이었다. 단순한 시각으로 보면, 한국과 북한 그리고 중국의 어선들이 꽃게어장을 두고 각축을 벌인 셈이었다.
그리고 아이러니도 있다. 어뢰정까지 격침당하는 패배까지 감수하면서 잡아올린 그 꽃게들이 중국을 거치는 무역 경로를 통해 한국으로 수입되어 한국 어물시장에서의 꽃게값 폭등을 막아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참으로 기막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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