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서해 교전' 부각 배경

입력 1999-06-28 00:00:00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베이징 남북차관급 회담 2차 회의가 끝난 직후 서해사태와 관련한 북측 입장과 해법을 담은 서기국 보도를 내놓았다.

조평통은 "현 정세는 그야말로 조선반도의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이냐 아니면 전쟁이냐 하는 최후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면서 북한과 미국간에 '새로운 평화보장체계'를 수립하는 길밖에 해결책이 없다고 말했다. '최후 선택의 기로'라는 표현까지 쓴 데서 서해사태 발발 이후 북측이 느끼고 있는 한반도 정세의 위험성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지난 7일 이후(북한은 4일부터로 주장) 서해5도 인근해역에서 관할권 침범 논란이 벌어진 뒤 북한군 판문점 대표부, 조평통, 해군사령부, 유엔주재 북한 대표부 등이 잇따라 북측 입장을 발표했지만 이 발언들은 주로 서해사태 발발 책임을 따지는수준에 머물렀다. 판문점 장성급 회담에서 북한은 남북한 미국 3자 군사회담을 제의하기도 했으나 이슈화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이번 조평통 입장 표명과 거의 동시에 있었던 평양방송의 베이징 남북 차관급회담 보도에서도 북측은 서해사태의 해결을 최우선시하고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북한은 회담 종료 후 내보낸 평양방송 보도를 통해 △지금 한반도 정세와 관련 긴박하고 중요한 문제는 서해사건이며 △이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회담을 진전시키려는 입장이 아니고 △'무장도발'을 일으킨 남측이 응당한 책임을 지고 어떤 형태로든 납득할만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서해사태의 직접원인이 됐던 북방한계선(NLL)은 "정전협정에도 없고 쌍방(북한과 미국)이 합의한 적도 없으며 그 누가 인정하지도 않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정전협정 제 13항 (ㄴ)목이 황해도와 경기도의 도 경계선 북쪽과 서쪽에 있는 모든 섬 중에서 백령도, 연평도, 소청도, 대청도, 우도 등 서해5도만을 유엔군측이 관할하게 돼 있고 서해5도와 북측 지역 사이에 해상분계선이나 한계선을 설정하지는 않은 점을 근거로 북방한계선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있다.

더 나아가 북한은 "영해를 12마일로 규정한 국제협약이나 12해리를 영해로 밝힌 남측 자체의 영해법에 비춰봐도 문제의 수역은 엄연히 우리(북)의 영해"라고 국제법과 국내법을 들어 반박했다.

이러한 사실들은 남한과 미국측이 "정전협정을 완전히 무시하고 그 이행을 전면 포기했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는 것"이며 "정전협정이 무시되는 상황에서는 임의의 시각에 전쟁으로 화할 수 있기 때문에 조.미 사이에 평화보장체계가 수립돼야 한다"는 게 북측의 '평화보장체계 수립' 논리이다.

종전 정전협정의 무력화에 앞장섰던 북한이 오히려 남한과 미국측이 정전협정을 무시하고 있다면서 북방한계선을 그 증거로 제시하고 북.미 사이의 평화보장체계 수립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처럼 최근 북측이 보인 일련의 행보를 통해 서해사태에서 북한이 궁극적으로 의도하는 것은 미국과 직접협상을 통한 '항구적 평화보장체계 수립'이라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서해사태는 약 80일간에 걸친 유고슬라비아 사태가 종결된 시점과 거의 동시에 발생했다. 미국 주도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유고슬라비아를 불시에 타격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지켜봤던 북한은 '다음은 북한 차례'라는 위기감을 공공연하게 표출해 왔다.

북한은 유고사태 종결과 때맞춰 한반도에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킴으로써 있을지도 모를 미측의 대북 선제타격 의도를 사전 견제하는 데 주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제는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려는 시도로서 미국과 '항구적 평화보장체계수립' 협상을 본격적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향후 우리측 대응이 어떻게 될지, 북측 의도가 어느 정도로 먹혀들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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