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기 민선자치 1년-(3)흔들리는 공조직

입력 1999-06-28 00:00:00

요즘 대구시청앞 주차장은 아예 민원인들 시위장소로 변했다.지역에서 '제1시위장소'로 알려진 이곳은 연일 시위대들의 함성으로 주위가 산만하지만 공무원이나 인근 주민들은 이골이 나 있어 조용하면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될 정도다. 올들어 현재까지 시위 횟수만도 100여회, 매주 금요일마다 시위를 하겠다고 신청한 단체도 있다.

원칙이 있고 규정이 있는데도 개인이익에 조금이라도 손상이 가면 민원인들은 조직적으로 시위대를 편성한다. 1층 현관 앞 점령은 다반사고 심지어는 2층 시장실 복도까지 점령, 업무를 방해하기도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공무원은 예전처럼 이에 맞서 이들을 설득시키거나 잘잘못을 가리려고 하지 않는다. "민원인과 부딪치면 득볼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업무도 민원이 발생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극히 소극적으로 처리하려고 한다. 과거 한국경제 부흥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공직사회의 강력한 '조직력'은 민주주의가 성숙되고 지방자치제도가 뿌리 내림에 따라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다.공조직(公組職)이 예전같지 않다. '일사불란' '상명하복'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던 공무원 사회는 이제는 자치단체 별로 제각각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어 좋게 보면 개성화, 특성화지만 공조직이 무너지는 부작용은 감수해야 한다.

공조직의 쇠퇴는 먼저 인사권에서부터 찾아 볼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 소속 공무원의 임용권은 원칙적으로 각 자치단체장에게 있으므로 시와 구·군청간 인사나 도와 시·군간 인사 교류가 이뤄지려면 광역자치단체는 반드시 기초자치단체장의 승인이나 협조를 얻어야 한다.

그래서 가능한 자치단체 간에는 인사교류를 하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인사태풍에 휘말릴 필요없이 자치단체장 임기동안은 자리가 보장되는 '붙박이 공무원'들이 늘어나고 있다. 조직끼리의 '단절의 벽'도 자꾸 높아가고 있다.

공직사회 상·하급기관 구분도 별로 없다. 오히려 상급기관 주요자리는 권위는 사라지고 업무만 과중돼 이를 기피하는 기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올들어 현재까지 대구시와 구·군청간, 구·군청 상호간 공무원 인사교류는 모두 520명선으로 대구시 전체 공무원 1만796명의 5%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제 인사를 통해 공직사회 기강을 확립하기는 어렵게 됐다.

심지어 중앙정부의 지침이 곧바로 실천되지 않는 것도 많다.

정부가 범국민운동으로 활발히 추진하고 있는 제2건국위 운동만해도 대구시의 경우 이를 변칙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제2건국 대구시범시민추진위 구성을 위한 조례'가 아직까지 시의회를 통과하지 못했는데도 활동은 하고 있다.

의회는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며 지난 2월1일 본회의에서 이를 부결했다. 정부의 지침을 따르지 않을 수 없는 대구시는 부랴부랴 관련 '규약'을 만들어 위원회를 급조, 전국에서 유일하게 조례없이 제2건국 추진위를 구성하는 파행행정을 보이고 있다.

대구시는 의회 의결을 존중, 이를 다시 상정하지 않고 있으며 의회는 의회대로 자존심(?)을 지키기위해 이 문제를 취급하지 않고 있다.

또 최근에는 '공직자 10대 준수사항'이 국무총리 지시로 각 기관에 전달됐는데 '공직자 부인모임 전면해체'에 대해 일부 기초단체들은 반발하고 있다. "순수한 모임으로 말썽없이 운영되는 부인회를 왜 억지로 해체하느냐"며 거부할 움직임을 보인 것.

문제는 자치단체가 정부 지시를 어길 경우 이를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뒤늦게 정부는 '위반시 벌칙조항'을 만들어서라도 이를 강력하게 밀어붙이기로 했다'관료조직은 힘이 있으면 부패하고 무력해지면 와해된다'고 한다. 그러나 공조직은 힘이 있어야 한다. 과거 정권에서 보여준 권위적인 힘이 아니라 민주적이고 전문적인 힘과 조직력으로 민의를 대변해야 한다.

단체장은 '표'를 좇고 공직자는 단체장 눈치를 좇는 '해바라기성 공조직'은 지방자치제도 이후 싹튼 또 하나의 어두운 단면이다.

〈尹柱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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