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노라마 20세기문화 (42)안무가 피나 바우쉬

입력 1999-06-26 14: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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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는 형형색색의 카네이션으로 뒤덮여 있다. 아름다운 가곡이 흐르고 꽃들은 바람을 타고 출렁인다.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 이 아름다운 광경 속에 끊어질 듯 팽팽한 긴장감이 숨죽이고 있음을 암시한다. 꽃 주위에 원을 그리고 둘러앉은 사람들. 음악이 멈추면 제각기 의자를 들고 자리싸움을 반복한다.

갑자기 로맨틱 튀튀(팔랑팔랑 나부끼는 발레의상의 일종)를 입은 남자가 소리를 지른다. "당신들이 원하는 게 뭐야!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앙트르사? 그랑 즈테? 투르 앙 레르?…" 남자는 자신이 열거한 무용 동작을 하나하나 보여주고는 다시 대사를 내뱉는다. "아! 피곤해…" 곧이어 팝송의 전주가 흐르는 가운데 정장을 입은 신사가 등장한다. 느닷없는 분위기 전환에 의아해진 관중들은 사뭇 긴장하지만 객석에선 이내 폭소가 터진다. 신사는 가사를 수화로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금세기 안무가 가운데 가장 치열한 논쟁의 대상이 됐던 피나 바우쉬. 그녀의 1982년작 '카네이션'은 '피나 바우쉬 스타일의 신표현주의'의 단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예측할 수 없는 무대, 분절된 장면 전환, '대사'를 지껄여대는 무용수들, 극적인 무대장치와 효과, 특별한 분위기의 음악……. 피나 바우쉬가 전세계에 이름을 알리며 인기를 얻기 시작한 70년대, 그녀의 안무는 너무나 특이해서 '무용이 아니다'라는 격렬한 논쟁을 촉발시켰다. '무용에 대한 일반인들의 기대를 무참히 배신한 이단자', '현대인의 감각에 가장 효과적으로 호소할 수 있는 인물'. 그녀에 대한 평가는 언제나 극과 극을 달리곤 했다.

피나 바우쉬는 1940년 7월27일 독일 솔링겐에서 태어났다. 16세 때 에센의 폴크방 스쿨에서 쿠르트 요스의 지도를 받으며 무용을 시작했다. 표현주의의 거장인 요스와의 만남은 이후 '신표현주의'라는 독특한 분야를 확립한 바우쉬의 무용 경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1959년 폴 사나사리오 무용단과 도니아 퓨어 단원으로 일하는 동시에 줄리아드 음악학교 특별학생으로 입학, 무용과 음악을 병행하는 독특한 경력을 쌓는다. 비서술적인 안무를 추구하면서도 포스트 모던 무용과 피나 바우쉬 무용을 차별화시키는 요소인 '음악에의 관심'을 엿볼 수 있는 부분. 62년부터 요스가 이끄는 발레단에서 솔리스트로 활동하던 그녀는 68년부터 안무가로 변신,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73년 부퍼탈 탄츠 테아터의 감독으로 임명돼 본격적인 안무가로 나서게 된다. 77년 '푸른 수염', '와서 나와 춤을 춰요', '이민간 르나트' 등을 안무하는 동시에 세계각국을 순회하기 시작한 바우쉬는 '카페 뮐러'(78년), '콩탁토프'(78년), '순결의 전설'(1979), '1980-피나 바우쉬의 한 작품'(1980), '방도네용'(1980), '왈츠'(1982), '카네이션'(1982), '산에서 외침소리가 들렸네'(1984) 등 무수한 명작들을 쏟아내며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평론가 요쉔 슈미트는 피나 바우쉬에 대해 "그녀의 작품은 미적지근한 태도를 허용하지 않는다. 열렬히 좋아하거나 지독히 경멸하는 두 가지 반응은 관객을 확실한 찬성파와 반대파로 구분시켰다"고 평했다. 확실히 '피나 바우쉬'라는 이름이 세계 무용계에 등장한 이후 그녀의 작품이 가진 '마력'은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다 . 그러나 그 마력의 실체에 대해 체계적인 설명을 시도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녀의 작품이 춤이라기보다는 재미있는 연극에 가깝고, 무용에 대한 전통적 혹은 일반적 개념으로 파악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피나 바우쉬는 흔히 독일의 표현주의와 미국의 현대무용을 결합시켰다는 평을 듣는다. 연극적인 기법에 의한 사실적인 표현은 분명 표현주의의 영향이다. 그러나 바우쉬의 경우, 이 기법이 춤을 능가하면서 작품을 지배해 종종 비난의 대상이 됐다. 또 표현주의가 종종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결론을 제시하며 완결된 구조를 취한 것에 비해 피나 바우쉬는 어떠한 판단의 기준도 제시하지 않았다. 판단은 순전히 관객의 몫으로 남아있다. '밑도 끝도 없는' 시작과 결말은 피나 바우쉬식 '신표현주의'의 트레이드 마크다.

피나 바우쉬의 기교는 특별히 내세울 게 없다. 특정 춤으로부터 기인하는 원리도 찾아볼 수 없다. 원으로 서서 걷거나 난해한 손짓을 하며 하체를 흔들기도 하고 그냥 묵묵히 걸어가기도 한다. '이것도 무용인가'하는 의문이 당연시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피나 바우쉬의 무용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인간의 신체 그 자체다. 신체는 표현을 위한 도구가 아니고 그 자체로 모든 것인 셈이다. 피나 바우쉬의 안무 속에서는 무대에서 대사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 일상의 모습처럼 먹고 마시고 때로는 싸우고 춤을 추는 것초차 무용으로 받아들여진다.

"아마도", "모르겠는데요", "그런 느낌이 듭니다"는 식으로 불확정적인 말투를 즐긴다는 피나 바우쉬의 철학이 자신의 안무와 관객·비평가들을 대하는 태도 속에 남아있는 탓에 그녀의 무용에 대한 명쾌한 해설과 이해를 구하기는 어렵다. '한가지로 귀결되는 주제와 결론' 자체가 바우쉬의 무용관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부퍼탈 탄츠 테아터를 이끌면서 정립된 바우쉬의 무용은, 극과 현실이 직접적으로 대립되는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신체적 사실성을 명백한 미적 형태로 전달하는 '경험극'으로도 일컬어진다. 아마도 바우쉬의 무용을 대하면서 관객들이 보여주는 '열광'은 마침내 '춤 자체'에 대해 인식하게 되고 문학적·관습적 구속으로부터 무용을 해방시킨데서 온 희열이 아니었을까.

〈申靑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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