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집행부 견제
풀뿌리 민주주의 2기 1년. 주민들은 지방자치의 명암을 톡톡히 체험하고 있다.행정기관의 문턱을 낮춰 주민들에게 다가가려는 단체장들의 노력이 긍정적이라면 끊임없는 자질 시비, '표'만을 의식한 인기 위주 행정의 폐해는 어두움의 한 단면이다.
단체장이 자질 시비에 휘말릴 경우 이를 견제할 아무런 장치가 없다. 주민 투표에 의해 선출된 단체장은 법에 의해 임기가 보장된다. 단체장은 이 기간 지역에서 왕처럼 군림할 수도 있고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자로 각인될 수도 있다. 문제는 전자의 경우다. 단체장이 실정을 하거나 무능해도 형사 처벌외엔 탄핵의 방법이 없다. 시.군의회의 견제 기능도 단체장과의 역학관계를 고려하면 한계가 있다. 단체장의 자질부족이나 정책 판단 오류, 비리에서 비롯된 폐해는 단기간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정책은 장기간 주민들을 괴롭힌다.
영천시장은 2기 취임도 하기 전인 지난해 6월 아파트 허가와 관련 1천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지난 2월 대구고법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대법원에 상고중이다.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늦어지면 리더십 부재 현상이 빚어질 것은 불문가지. 시급한 영천시가지 우회도로(국도 4호선) 공사는 올 소요 예산이 80억원이나 40억원만 확보됐다. 예산 확보를 위한 노력도 사실상 중단됐다. 피해는 고스란히 교통체증에 시달리는 시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지난 22일 울진시장에서는 읍내2리 청년회원들이 시장 한복판에서 '군수는 장군이고 군민은 이등병인가' 라는 내용의 유인물을 돌리며 단식농성을 벌이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사태는 '청소년 수련관 대관문제'로 면담을 위해 군수실 앞에서 기다리던 청년회원들을 외면하고 돌아선데서 비롯됐다. 군수가 자리를 뜨며 '저 ××들 뭐야'라고 욕을 했다는 것이 청년회측의 주장. 군수퇴진운동으로까지 번져 가던 이 사태는 심각성을 인식한 군수가 청년회를 찾아 공개 사과하면서 파문 3일만에 일단락 됐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대구 경북 지역에서 유일하게 국민회의 소속으로 군수에 당선돼 화제를 뿌렸던 군수의 군정 스타일이 심판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목을 끌었다. 봉화군수는 95년 군수당선 전 자신이 대표로 있던 연탄공장을 이전한다며 군수 취임후 임야를 일반공업지역으로 용도변경받은 후 공장은 이전하지 않은 채 일부를 매각, 구설수에 올랐다. 울릉군수는 재선전 조약돌 해변이 유명한 울릉군 남양리 항구 개발은 절대로 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재선 출마전후 일부 주민여론에 밀려 남양항을 3종항으로 승격시켜 항만개발을 추진, 울릉도 유일의 조약돌 해변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시의회의 견제 기능을 기대 한다는 것은 아직은 환상에 가깝다. 안동시의회는 지난해 의장단 선거 과정에서 의장과 부의장을 비롯, 전현직의원 17명이 뇌물수수혐의로 구속 또는 입건돼 도덕성에 큰 흠집을 내면서 집행부에 끌려다니는 신세가 됐다.
ㅊ군 의회는 의원 상당수가 친인척 명의로 건설업 등 면허를 얻어 해당 지역에서 발주하는 소규모 공사를 독점하는 사례가 많아 집행부에 대한 견제 보다는 공생을 택하고 있다.
단체장의 독선으로 불거지는 공무원들의 창의력 저하, 자발성 부족도 문제다. 관선시대에는 단체장에게 밉보이더라도 1~2년만 버티면 됐다. 지금은 단체장의 의중을 거슬러 가며 소신있게 업무를 추진하는 것이 어렵다. 사무관 승진을 비롯, 주요보직 전보인사 등 인사권을 단체장이 쥐고 있다. 한번 찍히면 끝장이라는 의식이 팽배하다. 승진만 바라보는 공무원들은 충성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
지방자치 시대 단체장의 독선과 무능 행정을 견제하는 것은 결국 주민들의 몫이다. 잘못된 선택은 단체장의 재임기간 뿐만아니라 그보다 훨씬 오랜 기간에 걸쳐 주민들에게 불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 민선 이전 전국지방자치 단체가 안고 있는 1인당 부채 규모가 209만7천원(93~94년)에서 민선 이후 377만9천원(96~97년)으로 80%나 증가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방재정이 악화되면서 지방채 발행률도 급증, 민선 전 지방재정에서 지방채 수입이 차지하는 비율은 9.9%였으나 민선후 13.8%로 늘어났다. 장기적 정책 비전 없이 순간의 인기에만 집착하는 단체장 선택의 결과는 후손들의 빚으로 남을 뿐이다. 시민운동 차원에서의 끊임없는 견제와 감시 없이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정착은 요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