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어느 사형수

입력 1999-06-19 14: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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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법을 잘 다스려…"사형수가 교수대에 매달리면서 남긴 말이다. 그는 사람을 죽여 연못에 가라앉혔다. 백번 죽어 싸다고 항소도 포기했던 사람이다.

그런데도 억울하다는 내막은 이렇다.

그는 정미소에서 일하다 한 팔을 잃었다. 보상을 받으려고 했으나 주인이 법대로 하라며 배짱을 내밀었다. 홧김에 행패를 부렸는데 고소를 당해 징역까지 살았다. 생 팔을 하나 잃고 징역까지 살고 나니 정말 억울하더란다. 그래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는 형장의 이슬로 가면서 참 후회스런 표정을 지었다.

바위옷류 식물은 햇빛을 받아 영양분을 만든다. 키 큰 것들이 햇빛을 가릴세라 햇빛 잘드는 바위에 자리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놈들이 늘 곰팡이류와 더불어 산다는 것이다.

곰팡이는 엽록소가 없어 광합성을 못한다. 바위옷에 붙어 양분을 얻고 바위옷에게는 수분을 만들어 준다. 이 둘이 붙어 있으며 다른 식물들이 살 수 있는 여건이 생긴다. 메마른 바위가 오래 젖어 있다보면 흙도 쌓이고 다른 풀씨도 날아들어 금새 키 큰 식물이 침입해 온다. 그러면 이놈들은 또다시 메마른 바위를 찾아 떠난다. 곰팡이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곰팡이를 함께 데리고 간다.

인간사도 마찬가지다. 억울하지 않은 운명이 어디 있겠나.

초원이나 그 위를 누비는 동식물의 세계에서 누가 더 억울하다고, 자연보호랍시고 감히 끼어들 수 있겠나. 먹고 먹히고, 물고 물리며 돌아가는데 법이 무얼 어쩌랴.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법에 한계를 느낀다.

다만 더 큰 불행을 자초하는 어리석음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 뿐이다. 서툰 정의감으로 또다른 억울함을 만들기보다 운명이려니 더불어 적응함이 생태계의 순리요, 삶의 지혜일지 모른다.

교도 25시인 사형장은 억울한 법을 원망하는 한 남자의 창백한 입술을 막았다. 그러나 억울해 하는 그의 모습은 두고두고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대구구치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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