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국주의 일본은 자본축적의 수단으로 아편을 활용했으며 조선 등 식민지들은 아편으로 부가 급격히 유출되는 등 큰 피해를 입은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국제법상 엄연한 범죄행위인 마약의 제조, 밀매행위는 일본 패전 후 진행된 도쿄 전범재판에서 단죄는 고사하고 언급조차 되지 않은채 지금까지 은폐돼 왔다.
이같은 사실은 일본 아이치대학 구라하시 마사나오(倉橋正直) 교수가 펴낸 '숨겨온 국가범죄를 파헤친다!-아편제국 일본'(지식산업사)에서 자세히 언급됐다. 군국주의 일본이 마약정책을 정부차원에서 펴왔음을 밝혀주는 논문과 자료집이 드물게 발견된 바 있으나 단행본으로 정리돼 출간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현재까지의 일본아편 관련논문은 1921년 발표된 김준연의 '조선의 모르핀 문제'와 1943년 일본에서 나온 자료집 '대동아의 특수자원:아편', 84년 발표된 구라하시교수의 논문 '일본의 중국침략과 아편' 등이다.
일본정부는 당시의 마약정책에 대해 사료공개를 한사코 꺼리고 있는 실정으로,구라하시 교수는 다년간 마약산지를 직접 찾고 자료를 수집한 뒤 지난 96년 9월 이책을 일본에서 출간했다.
구라하시 교수는 "근대일본이 견직물 공업으로 자본의 원시축적을 이룬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여기에 외국에 나간 일본인 매춘부의 송금과 아편·모르핀류의 밀매를 통한 이익도 추가돼야 한다"면서 "특히 마약정책은 규모면에서 일본의 자본축적에 크게 공헌했다"고 말했다.
아편 등 마약이 1차대전 후 발효된 헤이그 아편조약 등 국제법에 따라 불법으로 규정됐으나 군국주의 일본은 내무성과 후생성이 아편정책을 이어받으면서 마약이 국내외에서 대규모로 재배, 밀매되는 것을 부추겼다.
일본의 주요 아편 생산지는 와카야마로 1928년 현재 698.4㏊에 달했으며 이는 30년대에 급격히 증가추세를 보여 중·일전쟁이 전개되던 1937년에는 1천520㏊에 이르렀다. 일본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내몽골지역과 중국 지린성 그리고 한반도에서도 대규모로 아편을 재배하는 등 자본축적에 박차를 가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1919년 이후 한반도의 마약재배를 크게 늘렸다는 점. 예를들어 1934년 일본 내 마약재배면적은 868㏊였던 반면 조선의 면적은 2천177㏊에 달하는 등 해마다 두배 이상을 조선에서 생산했다.
초창기에는 경기, 강원, 함·남북 지역에서 재배됐으나 1939년 무렵에는 전국으로 확대됐으며 생산된 마약의 80%는 주 소비처인 대만으로 수송됐고, 이후에는 대만수요량의 전량이 조선에서 조달됐다.
구라하시 교수는 "패전 전의 일본은 그들이 소유한 식민지와 본토를 유기적으로 결합해 세계 최대의 마약제국을 형성했다"면서 "특히 최대 소비처인 중국에서 막대한 이익을 얻어 식민지 행정과 전쟁 수행의 경비로 조달했다"고 말했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런 일본의 마약정책이 패전 후에도 전혀 단죄되지 않은채 오늘날까지 실상이 대부분 은폐되고 있다는 점.
이때문에 전전의 아편정책은 어둠에서 어둠으로 숨겨져 국제조약을 위반하고 중국 등지에 마약을 밀수출한 사실이 일반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나아가 일본본토중 와카야마와 오사카에서 양귀비가 대규모로 재배됐다는 사실조차 은폐되고 있는실정이다.
댓글 많은 뉴스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