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인연

입력 1999-06-12 14: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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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부쩍 이혼율이 높아졌다느니 노부모나 자식을 버리는 패륜이 심하다느니 온통 수런거린다. 외국의 통계까지 곁들여 심사를 어지럽히기도 한다. 어쩌면 이런 풍설은 망설이던 이혼을 부추기거나 죄책감을 무디게는 할지언정 윤리적 경각심을 일깨우지는 않을성 싶다.

혼자만 몹쓸 죄를 지은 줄 알고 죽을 자리만 찾던 이가 교도소에 들어와 보니 자기죄는 하찮은 말썽정도에 지나지 않아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더라고 했다. 징역 10년도 징역 20년짜리의 절반밖에 안되고 무기나 사형수 앞에선 운도 못뗄 푸념거리더라나.

어떤 이들은 소위 우범지역의 생활권에 살다보면 사소한 범법행위는 생계수단이 되고, 막강한 권력계층에선 어지간히 큰 탈법행위도 한낱 관례라고 우기기도 한다.

이렇게 분위기를 흐리게 하는 데는 때때로 범죄보도를 흥미거리처럼 취급하는 매스컴에도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죄책감에 사로잡히면 기가 죽어 갱생 의지도 좌절되기 쉽고, 아무런 뉘우침이 없는 사람도 개과천선이 어렵다고 한다.

이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적절히 조정하는 것이 교정처우인데 가족들의 도움이 절대 필요하다. 다행히 우리 구치소는 매일 면회자 수가 수용인원의 절반가량이나 된다. 주로 부모나 자녀, 배우자, 형제들이다.

서로간에 손도 닿지 못하도록 겹으로 가로막힌 유리창 너머지만 미처 몰랐던 가족간의 소중함을 재삼 확인하는 그들의 모습은 죄로 인한 일시의 고통이 결코 가족의 인연을 끊어내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실감케 한다.

기댈만한 혈연이 없는 외로운 재소자들과 이런저런 의연을 맺은 교화위원들의 희생적 옥바라지는 너무도 진지하여 아름다워 보인다. 하느님의 사랑이, 부처님의 자비가 믿음으로 나타났거나 인정에 겨워서거나 한번 맺은 인연은 목숨보다 질기다고 한다.

인연은 '막살이로 막가는' 길목에서도 삶을 되돌려 이끌어 낼 수 있는 연줄이다. 죄지은 사람으로 하여금 잘못을 뉘우치게 하되, 죄책감에 주눅들지 않도록 어긋진 행동은 꾸짖어 바로잡되 사람은 사랑으로 보듬는 업보가 무려 삼생에 걸친 질긴 인연이라니 어찌 떨쳐 버려지랴.

소중한 인연들을 밤잠을 설치는 그리움으로 때로는 앓고 따르고 아끼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대구구치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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