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공간-(22)아파트

입력 1999-06-08 14:00:00

최초의 대단위 아파트 단지로 기록된 마포 주공아파트(구조설계 함성권)가 건설된 1962년. 당초 대한주택공사는 중산층을 겨냥한 10층 규모의 중앙난방식 아파트를 계획했다.

그러자 언론이 들고 일어났다. "전기사정이 나쁜데 엘리베이터가 무어냐" "기름 한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중앙난방이 무어냐"는 것이었다. 서울시 수도국도 '마실 물도 귀한 판에 무슨 수세식 화장실이냐'며 반대의사를 밝혔다.

결국 주공은 Y자형 동체구조를 가진 6층짜리 연탄보일러 아파트 450세대를 짓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12·15·16평형 3가지로 '검소'하게 지어놨는데도 입주자는 고작 10분의 1에 그쳤다.

그뿐인가. "김치독이며 된장독은 어디에 묻어야 하느냐"로 시작된 입주민들의 항의는 "비오는 날 연탄가스가 아래층으로 역류한다"는 소동으로 번졌다.

사태는 모르모트 실험으로도 모자라 현장소장이 직접 술을 마시고 가스중독이 가장 우려되는 방에서 1박을 하는 '셍체실험'을 거치고야 마무리됐다그후 37년. 아파트의 위상은 엄청난 속도로 비약하고 있다.

지난 2일 삼성물산이 분양한 서울시 서초구 '가든 스위트'. 21억 1천100만원짜리 107평형(평당 1천972만9천원)이 3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을 만큼 아파트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아파트가 갖는 딱딱한 수직의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고층일수록 연면적을 좁혀 곡선형 외관을 취한 것은 괄목할만한 변화다.

관상목을 심어 수목공간을 구성한 지하1층, 잔디가 자라는 옥상정원 등은 비록 고급 아파트에서만 볼 수 있는 사양이지만 '곡선화' '단독주택의 장점을 결합한 개량화'는 최근 아파트 건축의 주요한 테마로 자리잡고 있다.

직사각형의 외관, 게다가 창문·현관·베란다 등 모든 것이 직선화된 종래의 아파트 건축양식은 미학적인 가치가 낮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일으켜 왔다. 최근들어 한옥식 기와 형태를 취한 '박공(삿갓 모양으로 붙인 두꺼운 널 또는 벽)지붕'과 반원형으로 돌출한 곡선 베란다를 흔히 볼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아파트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여전하다. '관리'되는 아파트의 '편리함'보다 '자유'로운 단독주택의 '인간적'인 면을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이다. 영어 단어 '아파트먼트(apartment)'에서 'apart'는 '개별적으로' '뿔뿔이'를 의미한다.

반면 중국에서 아파트를 일컫는 '꿍위(公寓)'는 '같이 사는 집'이란 뜻. '한 건물에 산다'는 것에 대한 동서양의 기본인식이 다른 만큼 동양인이 아파트에서 느끼는 괴리감은 더 크다.

생활공간으로서 아파트가 갖는 결점적인 단점도 산재해 있다. 여러 가구가 모여사는 만큼 아파트처럼 독립성이 강조되는 곳도 드물다. 옆집에서 전해오는 내부수리 소음, 윗층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발소리, 환기구를 통해 '도청'되는 이웃의 사생활……. 수평적·수직적 소음의 확대는 아파트란 신 생활공간이 발생시킨 딜레머다.

또 주택보급을 위해 건축되는 대다수의 아파트에서는 녹지공간 부족, 직선형·밀폐형 가옥구조 등 '반정서적'인 문제점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주거학'(조성기·김일진 공저, 동명사 펴냄)이란 책은 서두에서 '주거의 역할'을 △안정성 △쾌적성 △휴양과 위락성 △가사처리의 능률성 △독립성 △개개인의 인격형성에 기여할 것 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인격형성에 기여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저자는 인간의 인성이 혈연관계·주거환경·교양에 관계되는 환경·직업환경 4가지에 의해 지배받는다고 설명하고 있을 만큼 주거환경의 교육적 측면은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거공간의 직선화는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추세다. 대구시의 경우 지난 94년을 기점으로 아파트와 단독주택의 비가 역전(아파트 17만7천225세대 : 단독주택 16만6천714세대)되더니 지난 97년에는 아파트 25만9천584세대 : 단독주택 19만5천630세대로 벌어졌다.

매년 단독주택의 수는 100단위로 증가하는데 비해 아파트는 1만단위로 뛰고 있다. 인간이 느끼는 고독감도 함께 고층화되는 추세다.

---요즘 아파트 어떤 것들이 있나

고급화·대형화만으로는 눈길을 끌지 못하는 추세다. 아파트도 이젠 '튀어야' 팔린다. '대량'보다는 '다양'함에 초점을 맞추는 요즘 아파트, 어떤 것들이 있을까?

△맞춤형 아파트

삼성중공업의 쉐르빌, 동아건설의 솔레시티 등은 철골조 아파트의 특성을 살려 소비자의 주문대로 내부 공간을 설계해준다. 방의 크기나 개수, 주방 인테리어에 이르기까지 개성을 살릴 수 있다.

△인공지능 아파트

현대산업개발이 음성인식아파트를 개발중이다. "문 열어라", "불 꺼라", "텔레비전 좀 보자"고 말하면 집이 알아서 움직이는 형태다.

△단독주택형 아파트

비인기층인 1층과 최상층에 정원이나 다락방을 끼워주는 아파트. 최근 분양되는 고급아파트에 널리 적용되고 있다. 1층 가구에는 공동 현관과는 별도로 단독주택 느낌이 드는 전용 출입구를 따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사이버 아파트

역시 고급형 아파트에 보편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옵션이다. 초고속 정보통신망·영상전화기를 설치하거나 인터넷·PC통신·TV시청이 동시에 가능한 인터넷TV를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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