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배우같은 의사

입력 1999-06-08 14:06:00

예술은 인간에게 빵은 아니지만 적어도 포도주 구실은 하고 있다고 장 파울은 말했다. 우리가 한평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매사에 예술적인 감각을 지니면서 산다면, 이보다 더 멋있고 맛있는 생활은 없을 것이다.

직업이 의사라고 해서 의술만 있어서도 안된다. 연극배우나 탤런트 같은 연기력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그럴듯한 연기력만은 발휘해야 닥터로서의 자격이 있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의사의 표정이 흐려 있으면 '내 병이 혹시?'하는 불안감이, 이와는 달리 의사가 실없이 싱글벙글하면 '저러다 수술을 할 때 실수라도?'하는 공포감이 쌓이게 되는 것이 환자들의 심리다.

따라서 의사는 너무 무표정해도 안되고, 너무 긴장해도 안되고, 얼굴을 찡그려도 안되고, 너무 웃는 표정을 지어도 안된다. 그야말로 탤런트나 연극배우 못지 않은 연기력을 갖춰야만 하는데 그게 어디 말과 같이 쉬운 일인가.

연기를 전문적으로 수업한 것도 아니고 보면 이거야말로 고역중의 고역이 아닐 수 없다. 한마디로 요약해서 찌푸리지도 말고, 웃지도 말라, 그러면서 환자를 대할 때는 사랑과 믿음과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 것이 의사의 직업이고 보면 참으로 고달플 수밖에 없는 것이다. 때문에 의사들은 진종일 진료실에서 마치 철사줄로 꽉 죄어놓은 것만 같은 긴장감 속에서 살고 있게 마련이다.

뿐만이 아니다. 어쩌다 진료를 하다 손톱 만큼이라도 시행착오를 할 경우, 환자들은 죽일 놈 살릴 놈 하면서 눈에 불을 켜고 공격의 화살을 퍼붓기도 한다. 그럴때마다 모닥불을 끼얹는 듯 얼굴이 화끈거리고, 수모감으로 자신도 모르게 초라해 지면서 마음이 위축될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그렇다고 히포크라테스와의 약속을 저버릴 순 없는 것이다. 소달구지에 밟히면서도 오뚝이처럼 다시 고개를 들고 자라는 질경이의 끈기처럼 의사의 사명인 박애와 봉사의 꽃을 더욱 아름답게 피워야 할 것이라고 다짐해 본다.

나는 오늘도 진료에 임하기 전에 먼저 거울앞에 선다. 얼굴표정을 점검하기 위해서다.

〈동서병원·한방병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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