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의 학자 남명(南冥)은 '임금이 쪽배라면 백성은 강물'이라 했다. 지리산에서 선조(宣祖)의 어명을 받고 대궐에 불려온 남명은 이 말을 해 진노를 샀다. 선조는 분을 참지 못해 사약까지 내리려 했다. 남명은 서슴없이 바른 말을 했지만 선조는 듣기 좋은 거짓말을 바랐던 셈이다.
천지가 있고 백성이 있어야만 임금이 있을 수 있다. 천지가 없으면 만물이 없고, 만물이 없으면 백성이 있을 수 없으며, 백성이 없으면 임금의 설 자리가 어디에 있겠는가.
강물이 순하게 흐르면 쪽배는 순조롭게 떠 가게 마련이다. 하지만 강물이 거칠어지면 사정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쪽배는 좌초하고 산산조각이 날 수도 있다. 통치자가 이러한 '하늘의 뜻'과 '백성이 하늘의 주인'임을 잊어버린다면 예나 지금이나 세상이 어지러워 지기는 마찬가지다.
--민심은 천심
우리 선현들은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라고도 했다. 민심은 마치 '부는 바람'과도 같아서 막을 도리가 없다. 민심을 잡아 잔꾀를 부려 보았자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맑다'고 우기는 어리석음에 다름없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우울해진다. 통치자의 시국 인식이 적지 않은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 무엇이 그토록 민심을 저버리고 여론을 거스르게 하는지.... 민심을 그대로 전하는 참모들의 직언(直言)이 실종됐다는 비판이 나오고, 여론조사까지 민심을 왜곡한다는 비난의 소리마저 없지 않다.
이런 비판과 비난이 사실이라면 정말 예사 문제가 아니다. 언로(言路)가 막히거나 흐름이 왜곡되면 통치권도 동맥경화를 면치 못한다는 교훈은 동서고금의 역사가 수없이 되풀이 말해 주지 않았던가.
지금 우리의 '쪽배'가 '강물'의 흐름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미로(迷路)를 헤맨다면, 국민의 여론을 '마녀 사냥'이나 '여론 몰이' 쯤으로 치부하고 '아집'이나 '독단'으로 치닫는다면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장관 부인들의 '옷 로비' 의혹 사건은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꿈꾸는 백성(서민)들에게는 '공동체 정신'을 뿌리 째 뒤흔들고, 서로가 지키고 따라야 할 행동 원리인 '도덕성'은 물론 '참여와 협력의 정신'까지 저버렸다는 비판을 비켜서기 어렵게 한다.
--민심에 맞서는 대통령
그보다도 더 안타까운 것은 '민심의 이반'을 읽어내지 못하는지, 애써 외면하는지, 이해하기 어렵게 하는 대통령의 정국 인식과 결정이다. 대통령은 왜 굳이 민심과 맞서고 있는 것일까.
'쪽배'가 순풍에 돛을 달기 위해서는 '강물'이 순하게 흐르고 있어야만 한다. 대통령은 민심을 저버리지 않고, 듣기 싫은 직언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아량을 잊지 말아야 한다. 비판을 애써 외면했던 지난 정권의 편견과 오만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
차제에 우리도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번 '옷 로비' 사건의 파문은 계층간의 위화감이 누적됐다가 용암처럼 분출된 경우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국제통화기금 체제 이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극심해지는 가운데 어느 계층이든 개인이나 집단의 이기주의로만 치닫는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진자들의 '부의 축적' 과정과 사회보장 체제가 지나치게 뒤틀려 있다면 더더욱 큰 문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많이 번 사람이 정직하고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존경하기는 커녕 '모자라는 사람'이나 '무능한 바보'쯤으로 여기는 세태는 가슴 아프게 한다. 더욱이 권력이나 금력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과욕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진 것이 적은 사람들에게 불이익을 주고 곤경에 놓이게 하며 심한 궁핍에 시달리게 하지나 않았는지, 따스한 마음을 열 수 있어야 한다.
--모자람이 아름다운 사회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면서도 가진 것이 적은 사람들의 '모자람'이 아름다운 것으로 여겨지는 사회는 아름답다. 그들의 모자람은 '맑고 빛나는 완성'을 향한 과정을 함축하고 있으며, 꽉 차거나 넘쳐 흐르는 것보다 오히려 돋보인다. 모자람이 여유로 여겨지고, 미치지 못하는 것이 발전을 위한 원동력으로 간주되는 사회야말로 살만한 곳이다. 우리도 부단히 그런 강물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같은 '강물' 위에 넉넉하게 떠가는 '쪽배'를 떠올려보는 지금도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이태수(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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