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차관회담 합의 의미

입력 1999-06-04 14:24:00

임동원(林東源)통일부장관은 3일 남북 차관급 회담 개최 합의를 발표하면서 "대화없는 남북관계에서 대화있는 남북관계 시대가 열리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해 4월 열린 베이징 남북 차관급 회담 이후 중단됐던 남북관계가 이산가족 문제와 비료지원이라는 상호 관심사를 매개로 '대화단계'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지난 해 정부가 20만t의 비료를 지원하되 3만t을 우선 지원하고 나머지는 이산가족 교류의 진전에 따라 단계적으로 주겠다고 제안한 것을 감안하면 북측이 1년만에 태도를 바꿨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임장관은 회담개최와 차관급회담의 정례화 이외에는 비공식 접촉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상당한 논의가 있었다'고 언급함에 따라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북 측으로부터 합의를 얻어낸 것 으로 추측되고 있다.

정부가 그동안 제시해 온 이산가족 문제 해결방안은 서신확인 등을 통한 생사확인 및 상봉과 고향방문 재결합 등의 수순임을 감안하면 이번 베이징 접촉에서는 이 가운데 서신교환과 생사확인 등 비교적 성사가능성이 높은 부분에 대해 북 측의 양보를 얻어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회담진전 여부에 따라서는 하반기 고향방문단 등 가시적인 성과를 얻어낼 수도 있을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물론 정부는 이번 회담에서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문제까지 해결하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지난 해 베이징회담에서 우리가 제시한 '판문점 면회소'설치에 대해 북 측이 반대하고 있지만 금강산이나 다른 지역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강도가 약하기 때문이다.

또 고향방문까지 이뤄진다면 남북관계는 남북경협과 민간교류의 활성화를 통해 본격적인 화해와 공존의 시대 개막의 물꼬가 트이게 되는 셈이다.

남북한은 지난 85년 9월 각기 50명의 이산가족이 포함된 고향방문단을 보내 분단이후 처음으로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으나 북한이 팀스피리트훈련을 핑계로 일방적으로 중단시킨 전례가 있다.

그러나 정부가 시도하고 있는 이산가족 문제 해결방식은 적잖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정부가 누차 강조하고 있듯이 대북문제를 정치적인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정부가 너무 서두른다는 것. 옷사건과 6.3재선거를 앞두고 정부측이 서둘러 회담개최 사실을 공표하고 나선 것이나 하반기로 예상되는 공동여당간의 내각제문제 등 정국을 돌파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또 김대중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강조해오던 '상호주의'를 파기함으로써 앞으로의 남북관계에서도 상호주의를 내세우기 어렵게 됐다는 점이다. 당장 6월회담이 성사되더라도 북 측이 비료지원만 받고나서 돌출사안을 핑계로 합의사항을 무시할 경우 남북관계는 언제든지 경색될 수도 있다.

인도적인 지원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비료지원이라는 경제적인 대가를 앞세웠기 때문에 사안마다 북 측이 경제적인 지원을 내세우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도 우려되고 있다.

〈徐明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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