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라운드 (2) 투기자본의 실체

입력 1999-05-31 00:00:00

국제투기자본의 위력이 드러난 사건은 지난 92년 9월 영국에서 발생한 '검은 9월 사태'다. 환차익을 노린 큰 손들의 장난에 영국 정부가 항복한 것.

당시 영국은 99년 유로화 단일통화권 추진에 맞춰 ERM(환율조정메커니즘)에 가입한 상태였다. 이는 자국 통화인 파운드와 독일 마르크간에 기준환율을 정한 뒤 상하 6% 내에서만 시장환율을 움직일 수 있도록 한 것. 급격한 환율변동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이때 독일은 막대한 통일 비용을 치른 뒤 마르크화 부족 사태에 직면, 물가가 치솟고 있었다. 마르크 확보를 위해 독일 정부는 이자율 인상에 나섰다. 투자자들은 다른 유럽통화들을 이자율이 높은 마르크로 교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같은 조치는 유럽 중앙은행들의 마르크화 부족을 부추겼다.

헤지펀드사인 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는 곧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당시 퀀텀펀드의 총책임자였던 스탠리 드루켄밀러는 특히 영국의 마르크 보유고가 낮다는 극비 정보를 입수, 92년 9월 대대적인 공략에 나섰다.

드루켄밀러는 파운드화를 대량으로 빌려 영국의 여러 은행에서 마르크화로 바꾸는 수법을 썼다. 마르크 보유량을 계속해 고갈시키면 영국 중앙은행이 높은 마르크 시세를 감당하지 못해 파운드를 대량 방출, 평가절하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노린 것.

당시 환율이 1파운드 대 2마르크라고 가정할 경우 투기자가 1억파운드를 영국 은행에서 빌려 마르크로 바꾸면 2억마르크를 받게 된다. 영국내 파운드는 그대로 남아있지만 마르크는 계속 빠져나간다.

이를 충당하기 위해 영국 중앙은행은 외환시장에서 꾸준히 마르크를 사들여야 한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유럽의 당시 상황은 마르크 확보를 어렵게 했다.

결국 중앙은행은 파운드 평가절하를 택하게 된다. 환율을 2파운드대 2마르크로 바꿀 경우 앞서 환전한 2억마르크를 파운드로 다시 바꾸면 2억파운드를 받는다. 앉아서 1억파운드를 버는 셈.

영국 중앙은행은 마르크와의 환율 평가절하를 피하기 위해 마르크 보유고가 부족한 것을 알면서도 종전 환율을 고수하려 했다. 그러나 퀀텀펀드의 파운드화 공략에 다른 수천개 펀드들이 가세, 영국의 마르크 보유고는 급속도로 고갈돼 갔다.

헤지펀드들의 한달반에 걸친 공세로 외환보유고가 평상시의 절반으로 떨어졌다. 영국은 금리를 10%에서 15%로 올려 파운드의 평가절하를 막으려고 안간힘을 쓰다 결국 투기자본에 굴복했다. 환율을 9% 평가절하하면서 ERM에서 탈퇴했고 이 과정에서 퀀텀펀드는 혼자 10억달러를 챙겼다.

파운드화 평가절하가 있은 다음날 이탈리아 리라화와 스페인 페세타화도 똑같이 당했다. 뒤이어 투기자본의 공격을 받은 스웨덴과 아일랜드도 금리를 3~5배까지 올리며 저항했으나 이듬해 11월들어 자국 화폐를 각각 9%, 10% 평가절하하게 된다.

프랑스 역시 93년 7월 한때 1분당 1억달러를 잃다가 결국 프랑화 방어를 포기했다. 유럽통화제도는 환율변동폭을 15%로 대폭 확대하며 14년만에 무너지고 말았다현재 지구를 돌아다니는 증권, 채권 등을 포함한 외환규모는 하루 1조6천억달러로 이들 중 대부분이 투기자본으로 분석된다.

독일 1년 총생산량과 맞먹는 금액이며 전세계 1년 원유거래액의 4배에 달한다. 세계 최고 외환보유국인 일본도 2천억~3천억달러 정도를 보유하는데 그치고 있다. 아시아 통화위기는 이들 투기자금 중 1천~2천억달러의 이동으로 비롯됐다.

〈金秀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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