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정상문(대구구치소 소장)

입력 1999-05-29 14:03:00

평생을 잠수부로 일하던 사람이 모종의 죄로 구속된 일이 있었다. 그는 잠시도 잠수복을 벗지 않겠다고 말썽을 부렸다. 물속의 높은 압력에 적응된 몸이라서 물밖에서는 온 몸이 견딜 수 없도록 아픈 잠수병이라며, 어떤 약발도 안받는다고 떼를 썼다. 높은 데로 올라가면 귀가 멍하고 가슴이 저려오는 것과 비슷한 증세라는데 그 정도가 심한 듯 했다.

우리의 몸은 이미 이런저런 생활속의 외압에 길들여져 있어 이에서 풀려나면 오히려 불편해 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마음만은 자유를 바란다.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비장한 호소도 자유를 향한 인간의 끝없는 갈망에서 나왔을 것이다.

자식이 힘들어 하는 일이면 숨도 대신 쉬어주려는 어머니의 맹목적인 사랑과, 시키잖은 짓은 할 생각도 말라는 아버지의 엄한 기합 모두를 숨막히는 굴레로 여겼던 소년이 있었다. 어느날 소년은 훌쩍 집을 뛰쳐 나왔다. 처음엔 하늘끝까지라도 날 수 있을 것 같은 해방감을 만끽했지만 이내 낯선 환경에 두려움을 갖기 시작했다. 그때 그에게 검은 손의 유혹이 다가왔고 소년을 그것을 뿌리치지 못했다. 나쁜 손인줄은 알았지만 외로운 자신을 인정해 주는 말 한마디에 그만 스스로 충성까지 다짐했고 범죄행동을 합리화 해버린 것이다.

청소년기엔 부모의 사랑조차도 때로는 자신의 자유를 막는 장애물로 여길 때가 적지 않다. 공연한 간섭이라며 저항하고, 그 돌파구를 찾느라 온갖 시행착오를 거듭하기도 한다. 그러는 동안 일부는 잘못된 길로 빠져들기도 하고 일부는 자제력이 길러져 세상과의 충돌을 피하면서 압박감을 느끼지 않게 되고 비로소 하나의 독립된 인간으로 홀로 설 수 있게 된다.

사람은 타율이든 자율이든 일정한 구속을 받으며 살아가게 마련이다. 인간이 갈망하는 자유란 곧 자율로서, 절대적 책임이나 의무의 해제가 아니다. 부모들은 자식을 오로지 감싸서 보호하려고만 하지 말고 일부러라도 능력검증을 해볼 수 있도록 틈을 주어야 할 것이다. 스스로를 알아가도록 때로는 놓아주기도 하고 때로는 부추기기도 해야 한다. 그러는가운데 인륜의 테두리를 벗어나지만 않도록 지켜주는 것이 올바른 양육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대구구치소소장〉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