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노트-'소선거구제' 당강령 뒤집기

입력 1999-05-28 00:00:00

다음은 여.야 어느 쪽 주장일까?"중.대선거구제는 막대한 선거 비용이 소요되는 등 폐해가 심각하다. 의원들이 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소선거구제를 지향해야 한다..."

물론 한나라당일 수 있다. 그러나 지난 25일 중선거구제로 최종 합의했던 여권, 그것도 청와대와 제1여당인 국민회의에서 제기해 왔던 논리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실제 당 강령에도 명시돼 있다.

지난 대선 직전인 97년 11월 개정됐던 국민회의 당 강령은 "우리의 현실에선 소선거구제에 의해서만 진정한 대표성 확보가 가능하다. 중대선거구제는 일본의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당내 파벌 성행, 막대한 선거 비용, 정국의 불안정, 신진 인사들의 진출 제약 등 폐해가 심각해 세계 주요 국가들이 폐기한 제도"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민회의 총재인 김대중 대통령은 사흘 전 김종필 총리 등 여권 지도부들과 회동, 중선거구제 안을 도출했다. 게다가 고비용 정치 청산을 최대 명분으로 내세웠다. 야당 때는 돈 정치의 주범으로 몰아 세웠던 중선거구제를 집권하자 돌연 옹호하고 나섬으로써 논리를 180도 뒤집은 셈이다.

자민련과의 단일안을 조율하기 위해선 당론을 고수하기 어려웠다고 강변한다면 궁색하다. 정치권에 중선거구제란 화두를 던진 것도 국민회의였는데다 자민련 역시 국민회의 만큼이나 소선거구제 고수론이 강했다.

논리의 급반전을 초래한 동인(動因)은 다른 데 있다. 우선적으로 당세 확장, 여권 측 표현을 빌리면 전국정당화 전략이 꼽힌다. 정당명부제 도입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집권 1년반 동안 각종 정치적 쟁점을 놓고 야당과 대치전을 거듭해 온 여당으로선 정국안정이 절실했고 이를 위해선 원내 안정 의석 확보가 시급했을 것이다. 지역당이란 멍에 역시 집권당 위상에 걸맞지 않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야당 분열을 통한 정계개편 속셈도 갖고 있을 것이다. "중선거구제는 당내 파벌 성행과 정국 불안정을 초래한다"고 지적한 당 강령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결국 여.야간의 협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정치권 개혁 약속은 당리당략에 밀려 퇴색되고 있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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