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일기

입력 1999-05-27 14:03:00

큰딸이 올해 중학생이 됐다. 25년전 내가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교복을 맞추러 동네 양장점에 가서 치수를 재는 동안 자신의 딸을 대견한 듯 바라보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선하다.

그런데 나는 내 키보다 한 뼘이나 더 크고 신발도 더 크게 신는 딸아이가 중학교에 간다는데 대견함은 커녕 불안하고 초조하기까지 했다. 특별히 모아둔 돈도 없는 내게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돈 모으는 걸 포기하라는 주위 사람들의 말이 가슴을 짓눌렀다.

입학식을 며칠 앞두고 난생 처음 교복을 입는다는 설레임에 들뜬 아이와 함께 교복가게에 들어섰다. 대기업이 만들었다는 유명상표의 교복값이 20만원 가까이 되는 걸 알고 놀라움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신사복도 한벌에 10만원이면 사는데 20년전과 다름없는 원단에다 디자인만 조금 바꾸고 이렇게 비싸게 받다니.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사물함 값이며 무슨무슨 준비물 값으로 거의 매일 돈이 나갔다. 땀 흡수도 거의 안 되는 100% 화학섬유로 만든 체육복 한 벌 값이 2만원 가까이나 됐다.

예전에는 등록금을 제때 못 내 담임 선생님께 맨날 불려다니던 아이들이 많았다. 그 시절에는 등록금이 부모들에게 가장 큰 부담이 돼 두서넛 되는 아이들 등록금 낸다고 금쪽같은 송아지를 팔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학교 등록금은 학원 종합반 한달치 수업료나 어지간한 과외 수업료보다 적은 액수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버린 우리나라 사교육비는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 아이의 장래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되도록 만들었다.

도대체 이 나라는 자식 둔 부모들을 언제까지 봉으로 볼 것인가. 유리알처럼 속이 다 보이는 월급쟁이들 얇은 봉투에서부터 서민들 50만원 적금 탈 때도 다 떼는 교육세는 어디다 쓰는지. 자식들 뒷바라지에 삶을 송두리째 바친 부모님의 그림자가 나를 덮쳐온다.

오늘 아침도 무거운 책가방을 어깨에 짊어진 채 현관문을 나서는 아이의 뒷모습을 애처롭게 바라보며, 그래도 마지막 남은 희망의 불씨를 지펴본다.

이경희(주부·경산시 옥산동)

---'교육일기'는 학부모와 교사들의 경험과 생각들을 함께 나누고자 만든 자리입니다. 자녀나 학생들을 키우고 가르치는 과정에서 겪은 체험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등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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