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8)잘려나간 자막들

입력 1999-05-27 14:09:00

'매트릭스'는 현란한 액션에 기발한 아이디어의 SF물이다.레오(키아누 리브스)를 재림예수에 비유하는 설정이 재기발랄하다. 감독인 워쇼스키 형제가 등장인물의 이름에 네오(Neo·새로운), 자이온(Zion·유대민족), 트리니티(Trinity·삼위일체)등을 쓴 것에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말 자막은 시종 '트리니티'를 '트린'으로 쓰고 있다. 자막이 길어 임의로 뒷부분을 잘라버린 것이다. '삼위일체'를 알고 보는 것과 모르는 것은 많은 차이가 난다. 설명없이 뒤를 뚝 잘라버리는 '절름발이 자막'도 또하나의 '폭력'이다.

'서스피션'은 말에서 떨어져 반신불수가 된 크리스토퍼 리브('슈퍼맨' 주인공)가 두발로 걸으면서 찍은 마지막 영화였다. 공교롭게 극중에서 하반신 마비로 나와 '무슨 조짐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세인들의 '입방아'도 있었다.

극중에서 크리스토퍼 리브는 아내와 동생의 불륜관계를 알고 둘을 살해하는 완전범죄를 꿈꾼다. 그러나 영화의 자막은 남편과 시동생을 경찰 동료로 묘사한채 친형제간 임을 생략시켰다. 아내의 불륜에 대한 남편의 분노가 덜(?)했고 죽어야 하는 당위성(?)도 약화됐다.

애드리안 라인감독의 '로리타'는 의붓아버지와 딸의 파격적인 사랑을 그려 미국에서도 개봉여부를 두고 논란이 많았던 작품.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1953년 쓴 소설이 원작으로 62년 명감독 스탠리 큐브릭에 의해 한차례 영화화된 작품이다.

배우들의 대사에는 분명 '아버지'(Stepfather)와 '딸'(Daughter)이지만, 자막은 '아저씨'와 '소녀'로 표시됐다. 당시 심의한 공연예술진흥협의회의 한 심사위원이 "친아버지는 아니지만 부녀간의 사랑이라는 상황설정을 두고 다소 논란이 있었다"고 말한점으로 보아 '충격파'를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던 것.

구스 반 산트의 '아이다호'에서는 남자들끼리 '사랑해(I Love You)'라고 하자 '엄마가 보고 싶어'로 자막처리, 극장안에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金重基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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