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가짜 독립유공자

입력 1999-05-24 14: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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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을 빛내고 후손에게 긍지를 심어주는 일이 좋은 활동임에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자칫 자신의 명예를 위해 조상 욕보이는 경우도 더러 보게 된다. 알만한 어느 사람이 부친을 억지로 독립유공자로 만들기 위해 무진 애를 쓰다가 큰 코 다친 일도 그러한 경우의 하나.

살기가 무척 힘들었던 1930년쯤, 만주사변을 전후하여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이끌고 만주로 이사 갔다. 흉년에다 일제가 곡식을 빼앗아 가서 기아에 허덕였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귀국한 부친에 의해 주인공은 자라났고, 돈을 꽤 모아 남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가 되었다. 여유가 생기자 부친의 만주생활을 독립운동의 역사로 만드는 데 발벗고 나섰다.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조상의 업적을 신문이나 잡지에 쓸 때마다, 그는 부친 이름도 슬쩍 넣어 달라고 주문했고, 또 대가 지불도 잊지 않았다. 어느 틈에 그의 부친은 독립운동가로 이야기되고, 그도 유공자 후손들 사이에 끼어 들어 활보하였다그는 유명한 독립지사를 찾아 자기 아버지 이름을 말했다. 당연히 모른다고 할밖에. 대화 가운데 만주에서 활약한 인물 가운데 후손이 없고, 비슷한 이름을 가진 한 유공자의 이름을 찾아내고 자기 부친의 별명이라 주장하고 나섰다. 이름 하나만 사용한 독립지사가 별로 없으니 말이 된다.

기록이 쌓이자, 이를 국문학을 전공하는 어느 교수에게 보이고, 비문을 써달라 주문했다. 이 교수는 책임감 없이 그의 부친을 '만세의 영웅'으로 표현해 주었다. 서울에 있는 문중 중앙회는 그를 크게 표창하였다. 조상도 잘 받들고, 헌금도 크게 하니 그럴 만하다.

이제 남은 일은 유공자로 포상 신청하는 일. 그는 그동안 만들어낸 기사와 비문을 묶어 국가보훈처에 포상을 신청하였다. 결과야 뻔하다. 선언서, 재판판결문, 형사기록부, 당시 신문기사 등 1차 자료가 없으니 심사대상조차 되지 않았다. 게다가 너무 떠받들다보니, 김구선생 만큼 위대하게 서술된 것도 웃기는 일이었다. 거짓도 적당해야 하는데.

〈안동대 교수·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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