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을 뒤돌아보면 참 험난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불행의 그림자들. 번번이 그 그림자에서 탈출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아버지의 무능력과 주사, 어머니의 가출은 가족들을 뿔뿔이 헤어지게 만들었다. 나는 아버지에 의해 성당동에 있는 신망원이라는 고아원으로 보내지게 되었다. 이러한 어린 시절로 인해 나는 저절로 옆길로 가게 되었고 결국 범법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얼마전에 16년의 교도소 생활을 마치고 사회로 복귀하면서 한국갱생보호공단 대구지부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곳의 알선으로 말소된 주민등록을 살리기 위해 주민등록이 최종 말소된 대구시 중구 성내2동사무소를 찾아갔다.
주민등록 담당자에게 나의 출소증과 함께 그동안 살아온 과거사를 말하고 말소된 주민등록에 대해 의논을 해보았지만 기록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유은주(주민등록 담당자)씨는 상심어린 눈빛으로 나에게 몇가지를 더 묻고는 오후에 시간이 있으면 다시 와보라는 것이었다. 토요일이었지만 퇴근하지 않고 그 많은 서류를 열람하면서 추적을 해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날 오후. 그녀는 장시간동안 터에 앞에 매달렸다.
그녀의 노력으로 25년 동안 생사를 모른채 살아온 누나(이명주·부산거주)를 찾고 서울에 계신 어머니도 만나게 되었다.
나는 39년이라는 세월을 살아오면서 타인으로부터 배려나 사랑을 받아본 적은 물론 관심이나 인정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진 사람으로서 사실상 그 국적이 없는 사람처럼 나의 호적이나 주민등록이 전무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사회에 복귀하였지만 당황스럽고 떳떳지가 못하였다. 이것만 해결된다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용기을 잃지 않고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심정이 이제는 어머니를 찾고 누나를 만나는 계기까지 마련하게 되었다.
유은주씨는 말단 공무원으로서 희망 없는 한 인간을 선도하는데 모범을 보였다. 누가 자기 시간을 빼앗겨 가며 그 오랜 시간동안 불확실한 일에 헌신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 앞에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사회가 IMF로 더 각박해지고 있다고 하지만 이 어려운 시기에 이런 공무원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믿음이 가고 반갑기만 하다.
16년만에 사회에 첫발을 디딘 나로서는 불신과 피해의식만 가져온 지난날의 잘못된 사회 의식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같아 좋았다.
그 뿐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이 상 곤 (한국갱생보호공단대구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