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이든 원리를 모르면 복잡하고 부담스럽다. 제사가 가장 많이 부딪치는 예. 서원이나 향교에 들어서는 일도 마찬가지. 하지만 이들의 구성은 생각보다 간단하다.향교는 공립 중등학교, 서원은 사립 대학 격이다.
지금 학교와의 차이는, 그곳들에는 돌아가신 스승을 모시는 사당이 있다는 것 뿐. 그렇다면 이해는 간단해질 것이다.
학교로서 기능하기 위한 공간과, 사당 공간으로 크게 나뉠 것이기 때문. 그 중 학교가 제대로 갖춰지기 위해서는 강의실이 있어야 하고, 선생 및 학생 숙사, 이들에게 밥을 해주고 뒤를 돌봐주던 집 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의 강의실은 보통 '전교당' '입교당' '명륜당' '강당' 등으로 불리거나 이름 붙여져 있다. 숙소는 거의가 강의실 앞마당 좌우에 마주 보고 세워져 재(齋)라 불려 동재·서재로 나뉜다.
뒷바라지용 건물은 '주사(주방집)' '고사' 등으로 불렸고, 대체로 향교·서원 공간 밖에 떨어져 배치됐다.
여기다 교사·학생·손님 등의 휴식공간도 필요할 터. 이것은 흔히 누각 형태로 나타난다. 또 책을 찍어야 강의를 할 수 있으니, 그 출판용 책판(목판)이나 책을 저장할 곳도 있어야 할 일. 이런 용도의 건물은 '장판각' '장서고' 등으로 불렸다사당은 여기 비해 작다.
대개 봄·가을 향사와 초하루·보름 참배 등 연중 30회 가량의 행사만 치러지기 때문. 그러나 학교 건물과 달리 신성성을 높이기 위해 단청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여기에 제물 차리기 작업용 공간인 '전사청'이라는 부속 건물이 붙는다.
하지만, 누구를 모시는가는 차이가 있다. 공립인 향교가 공자와 중국 유교 성현들을 주로 모시는데 반해, 사립 대학인 서원은 존경하는 우리 스승 몇분만 가려서 모신다.
안동의 병산서원은 서원 건축 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곳이다. 하회 마을과 낙동강둑 길로 10여리 떨어져 있으면서 서애 유성룡선생을 모시는 곳. 뒤로 화산에 기대고 있어, 점차 올라가며 공간이 배치됐다.
들어가기 위해 처음 거쳐야 하는 것은 외삼문(外三門). 3개의 문으로 이뤄진 이 형태의 대문은 일반적으로 서원을 상징하는 건물이다. 여기서의 이름은 복례문. 이걸 지나자마자 곧장 규모 큰 누각 만대루(晩對樓) 밑을 통과한다.
역시 오름 길. 지나쳐 고개를 들면 강의실인 입교당이 내려다 보고 있다. 정면 5칸, 옆면 2칸 짜리. 정면 맨 가 좌우 한칸씩에는 방이 들여져 있고, 중간 3칸이 대청 강의장이다. 앞마당 좌우에는 각 4칸씩의 재가 시립했다.
전교당을 뒤로 돌면 또 오르는 길. 그곳에 사당이 자리했다. 존덕사(尊德祠). 서애선생 등 2분을 모신 정면 3칸 옆면 2칸의 맞배지붕 자그마한 건축이다. 다시 3개의 문으로 구성된 내삼문(內三門)을 지나 들어가되, 중간에 있는 문은 신이 다니는 문이라 해서 사람은 옆문으로만 출입한다. 관솔 불 밝히던 앞마당 두개의 훤칠한 정료대(庭燎臺)가 분위기를 더욱 청량케 한다. 그 좌우 담 너머에는 전사청과 장판각이 자리 잡았다.
이같이 학교가 앞에 있고 사당이 뒤에 있는 형태를 전문가들은 전학후묘(前學後廟) 방식이라 부른다. 그 반대되는 전묘후학 배치도 적잖다.
하지만 병산서원인들 대도시 한복판에 자리했으면 그 건축적 명성이 지금 같기는 힘들었을 터. 이 시리즈가 앞서 소쇄원 편에서 얘기했듯, 일대의 자연과 절묘하게 어우러짐으로써 널리 뛰어나게 됐을 것이다. 걸음을 되돌려 강의실인 강당 마루에 앉으면 곧바로 실감된다.
남쪽 마주에는 병풍 처럼 병산이 초연히 일어섰고, 서원과의 사이에는 낙동강이 맑디 맑은 물을 흘린다. 넓다란 백사장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식구.
앞쪽의 만대루는 바닥 높이가 강당 마당 보다 겨우 조금 높은 정도. 뒤 화산에서 쏟아져 내려오다 병산에 막힌 청량한 기운들이 이 누각에서 하늘 높이로 치솟는 것 같은 느낌이 바람 처럼 스친다.
16년째 이 서원 방마루를 쓸고 닦는다는 시청직원 유시석(柳時錫·46)씨도 만대루 사랑에 침이 마르고 있었다. "6천8백여평의 서원과 앞의 병산, 낙동강이 모두 이 누각으로 기를 모으지요".
7칸짜리 누각에는 200명이 앉고도 자리가 남는다 했다영주 순흥의 소수서원은 이와 달리 평지에 위치하고, 사당과 학교 공간의 배치도 특이하게 동학서묘(東學西廟) 형이다. 강당 역시 학교 건물이면서도 단청을 했다. 또 사당 출입문도 3문이 아닌 단문이다. 제관들은 그래서 측면으로 난 또다른 문으로 들락인다.
이 서원 박석홍(朴錫泓) 학예연구원은 "소수서원 건물들의 배치는 유교 정신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고 했다. 학생 기숙사인 '학구재'는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가르침에 맞게 스승 숙사인 '일신재' '직방재' 뒤로 물려 지었고, 방바닥 높이도 한자 만큼 차이를 뒀다.
동학서묘 형태도 '서쪽을 으뜸으로 삼는다'(以西爲上)는 규례에 가장 잘 맞는 배치이며, 장서각을 스승 숙사 오른쪽에 둔 것도 오른쪽이 으뜸 자리(좌우지선, 座右之先)라는 이치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박연구원은 또 소수서원은 하버드대학 보다 93년 빨리, 영국의 옥스포드와 같은 시기에 공인된 유서깊은 국내 첫 사립대학이라 강조했다. 354년에 걸쳐 전국 어느 서원과도 비교되지 않는 4천명이나 되는 졸업생을 배출했다고 했다. 흔히 도산서원 출신인줄 알지만, 퇴계의 중요 제자 전원이 배출된 것도 바로 이곳이라 했다.
소수서원 자리에는 본래 숙수사(宿水寺)라는, 발굴 때 금동불상만도 25구나 나온 큰 절이 있었다. 그러다 금성대군이 이곳으로 유배 와 단종복위 운동 때문에 처형되자 전부 불태워졌다는 것. 소수서원은 바로 이런 절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역시 옆을 흐르는 죽계천이 없었다면 무미건조했을 것이다. 서원에 생명을 주는 죽계천은 '죽계별곡' 등으로도 알려져 있는 소백산 죽계에서 내려 오는 고담한 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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