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秘자 타령과 軋轢

입력 1999-05-14 00:00:00

정치권에서 느닷없이 신문을 읽는 국민들에게 한자공부를 시키고 있다.

비(秘)자 한 글자가 들어가는 비서(秘書)란 직책을 놓고 1차원적인 자의(字義)해석과 현실적인 측면에서의 역할론이 맞붙어 판을 벌인 것이다.

전자의 자의해석쪽은 집권여당 총재권한대행의 직접 언급이요, 후자는 또다른 권부(權府)의 핵심포스트를 틀어쥐고 있는 청와대의 정무수석이다.

어느쪽이든 국민들의 일상과는 거리가 먼 당의 전당대회 소집시기를 놓고 벌인 것이니 모름지기 국민들은 구경밖에 할 것이 없다.

그러나 밤낮 무슨 비리, 사고, 난입, 수뢰로 돌아가는 판속에 겨우 한숨돌릴 여유를 가졌다는 것은 거꾸로 평가할 일이다. 원래 비(秘)자는 '숨길 비'로 통용되지만 드물게는 '깊이 알기 어려울 필'로도 읽힌다.

'비밀한 문서 또는 그 사무를 맡아보는 사람'이 그 자전적 의미다. 신묘하여 헤아리고 알아듣기 어렵다(其計秘世莫得聞)는 출전(出典)도 있다.

문제는 청와대의 정무수석이 자의대로의 직책에만 머물러도 되느냐에 있는 것. 대통령의 정국관련 의중을 제대로 읽어 내야 한다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현실적인 책무라면 그림자노릇만으로는 무능과 직무유기에 해당하기 십상이다.

대통령 발언의 함의(含意)를 조용하고 치밀하게 새겨 현실화하는 것이 이상형으로 평가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 집권당총재 대행이 "'감출 비(秘)'자 비서가 왜 당의 일에 이러쿵 저러쿵 하느냐"고 몰아 붙인 것이나 "대통령수석비서관이 감출 비(秘)자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냐"고 받아치는 모습은 권력과는 담을 쌓은 일반인들에게는 이 역시 밥그릇싸움의 하나로 보여 민망하다.

이왕 한자풀이가 화제가 됐으니 차제에 삐걱거릴 알(軋), 삐걱거릴 력(轢)자를 제시한다. 권력의 중심축 두수레바퀴에 기름을 제대로 치지 않을때 나는 소리가 바로 알력(軋轢)이다.

〈최창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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