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장관 의장 '조정회의' 신설

입력 1999-05-04 00:00:00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회통과로 정책조정기능이 앞으로 어떤 형태로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이뤄질수 있을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단 이번 조직개편에서 정부조직법에 근거를 두는 법정기구로 내각내에 경제정책조정회의를 설치하고 재경부장관이 의장을 맡도록 함으로써 재경부에 법적 조정권한이 부여됐다.

과거 김영삼정부 시절의 경제장관회의와 같은 위상의 기구가 될 것으로 보이나 당시 이 회의를 주재하던 사람은 예산기능을 가진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이었던데 비해 이제는 예산기능이 떨어져나간 상태의 재정경제부장관이 의장을 맡는 것이다.

총리령에 근거를 두고 있으나 주요경제 문제가 반드시 이 회의를 거치도록 하는규정이 없기 때문에 토론과 의견조율의 기능에 머무르는 한계점을 보여왔던 현행 경제장관간담회에 비해서는 일단 격상된 것이다.

지금까지 경제장관간담회에서는 이규성(李揆成) 재경부장관이 자신의 관록과 경륜을 바탕으로 그에 비해 관료생활 후배인 다른 경제부처 장관들을 아우르는 다소개인적 덕망과 경륜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조정이 이뤄져왔다.

따라서 부처간에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경우에는 사실상 조정이 어려웠고 조정역할을 청와대가 맡는 경우가 빈번했다.

아직도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양당구도가 그대로 내각에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예산기능이 없는 경제정책조정회의 의장의 영향력이 법적인 뒷받침 만으로 과거 경제장관회의 때처럼 강화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게다가 금융기관 인·허가권 및 특수은행 건전성감독권, 자율규제기관 감독권의 금융감독위원회 이관, 외국인투자 유치기능의 산업자원부 이관 등이 우선추진대상에 포함됨에 따라 법령 제·개정권을 제외하고는 금융분야의 기능이 모두 금감위로 이관돼 떨어져 나가게 된다는 것이 기획예산위의 유권해석이다.

따라서 과거 현실적인 힘의 원천이 되는 감독권한을 바탕으로 금융정책을 수립·조정하던 재경부의 모습은 사라지게 되고 대신 금감위가 실질적인 금융분야의 정책조정 기능을 맡게될 전망이다. 다만 재경부는 거시금융정책의 운용방향 수립과 금융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수립 업무를 맡을 것으로 보인다.

예산기능은 예산청이 그동안 외청으로 나가있었고 그것도 기획예산위원회와 '사실혼'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예산청 분리로 인한 영향이 새롭게 나타날 것은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이에 따라 재경부는 이번 조직개편으로 신설되는 경제정책조정회의를 과거 경제장·차관회의와는 달리 민간 전문가들의 참여를 허용하는 개방형으로 운용하는 등 정책조정 과정의 전문성을 높이고 경제차관회의도 법제화할 방침이었다.

과거 실무차원에서의 조정을 거쳐 부처간 합의가 이뤄진 이후에나 안건을 상정하던 경제장·차관회의의 형식을 탈피, 경제차관회의를 각 부처가 관련분야 민간 전문가를 대동한 가운데 난상토론을 벌일 수 있는 토론의 장으로 만들어 부처간 충분한 논의를 거치게 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어느 정도 조정된 안을 재정경제부장관이 주재하는 경제정책조정회의에 올려 경제차관회의에 비해서는 다소 격식을 갖춘 가운데 장관들이 관련 전문가등의 의견을 청취하고 의견을 조율하겠다는 방안이었다.

과거 재정경제원이 예산기능을 활용해 정책조정을 하던 관행이 이번 조직개편으로 달라지게 됨에 따라 정책조정과정 자체를 전문성을 높이고 개방형으로 운용함으로써 부처간에 한단계 높은 수준에서 격렬한 토론을 거쳐 결론을 도출하는 형태로 전환한다는 구상이었다.

재경부는 이같은 기능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경제정책조정회의의 사무국 역할을 맡을 조직으로 정책조정국을 별도로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했었다.

경제정책국의 5개 과로는 산적한 사안을 검토하고 조정하는 업무를 맡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재경부의 경제정책조정기능 강화방안에 대해 청와대 경제수석실이 제동을 건 것으로 알려져 이같은 방안이 실현될 수 있을지는 아직 유동적인 상태다.

게다가 이제 기획예산처가 예산기능을 바탕으로 개혁을 추진해나가다 보면 경제정책 조정업무와도 일부 중복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재경부의 정책조정 기능 강화에는 걸림돌이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재경부 관계자들은 과거 법적 구속력이 없었던 경제장관간담회에 비하면 경제정책조정회의는 법령상 권한을 부여한 것이기 때문에 과거보다는 부처간 마찰의 소지는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역시 예산권과 감독권 등 현실적인 힘이 뒷받침되지 않는 체제이기 때문에 운용여부에 그 성패가 달려있다고 이들은 지적하고 앞으로 경제정책조정회의의 의장을 맡을 재경부장관이 '학식과 덕망과 경륜'을 갖춘 인물이 되어야 마찰의 소지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최근 경제정책 조정기능이 부쩍 강화돼온 청와대 경제수석실과의 미묘한 관계도 앞으로 재경부의 경제정책 조정기능 수행방식에 큰 변수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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