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한 번 제대로 보기 어렵도록 우리의 오늘을 각박하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 이유야 많겠지만 교통 수단의 발달이 큰 몫을 차지했음은 분명 했을 터.
10여년 전 부터 불어 닥친 '마이 카'시대로 현대인들은 '집앞까지(door to door)'가 될 수 없는 버스 등의 교통편을 향수나 낭만을 돋우는 부차적 교통 수단으로나 생각하게 됐다.
신영남 기행 취재팀은 이처럼 희미해져 가고 있는 생활 주변의 것에 눈을 돌려보기도 했다. 첫 대상은 시골 버스의 현주소. 바닥으로부터 물을 긷듯, 이를 통해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동시에 가다듬어 보려는 것이다.
경북 최고의 오지라는 영양. 기껏해야 10여편 정도인 다른 지역과는 비교가 안되는 28편의 비수익 버스노선(오지노선)을 보유한 지역.
이 곳엔 '영양버스'가 하루 12대의 버스를 운영하며 오지노선을 포함해 마을마다 승객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많이 바뀌었지. 손님이 없잖아"
영양버스터미널앞에서 25년 동안 조그만 슈퍼를 운영해 온 황점권(57)씨. 이전에는 정류장 개찰원으로도 일했다는 그는 달라진 시골 버스 풍경을 짧게 한마디로 풀어내며 턱짓으로 터미널을 가르켰다. 터미널에 세워져 있는 4대의 버스에는 기껏해야 4~5명의 승객이 타고 있다 출발하는 썰렁한 모습이었다.
90년대 들면서 승객이 조금씩 줄기 시작했다는 그의 증언은 '셋방 살더라도 차는 있어야 한다'던 도시 시속과 어지간히 맞아 들었다. "여긴 젊은 사람들이 너무 없어. 70-80대 노인들이 장 날되면 장 봐서 먹고 살지"
버스터미널 뒷편 장터의 장 서는 날인 4일과 9일 풍경도 마찬가지냐는 질문에 별반 다를게 없다며 그가 덧붙인 답이었다. 농촌 버스로만도 고스란히 우리 도·농의 변화상과 문제점 등이 투영되고 있는 셈이었다.
오지 노선의 하나인 영양읍-상원리 간을 오가는 버스에 올라 탔다. 읍내 위치한 버스 터미널과는 불과 7㎞여 떨어진 곳이지만 오전 7시50분, 오후 1시 반과 6시에 들어가는 3편만이 운행되고 있었다. 1시40분행 버스에 타고 있는 손님은 불과 6명. 6시 반에 타고 나온 버스에서도 승객수는 비슷했다. IMF로 인해 정부의 비수익노선에 대한 30% 예산 삭감조치가 이뤄지면서 2편이 지난 3월 줄어들었음에도 사정은 마찬가지.
그렇지만 당초 오전 9시 반과 4시에 다니던 차가 오지 않은데 따른 마을 사람들의 불만은 대단했다. "한번 읍에 나가면 시간이 너무 빼앗겨요. 아침 첫차로 읍내에 나가 찬거리를 사서 9시반 차로 들어와야 새참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이젠 그게 안되요"
상원 2리의 5백년 된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10여명이 모여 막걸리와 국수 등으로 때마침 오후의 새참을 즐기고 있던 마을 농사꾼들로부터 불평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 아이가 첫차가 늦게 다니는 바람에 아침 자습시간에도 참여를 못하고 있다니까요"
특히 60대 이상이 대다수인 이곳에서 유일하게 40대 한 여성 농사꾼의 영양고등학교에 다니는 자식 교육 걱정이 오래 귓전을 맴돌았다.
600여명이 사는 상원리엔 대다수가 60세 이상의 노령층인데다 개인 차를 갖고 있는 가구라야 1리 2대, 2리 4대 등 손꼽을 정도란 설명. 급한 일로 읍내에 택시를 불러 다녀오면 힘들게 가꾼 영양 고추 2근 반 값인 1만2천원이 들어가 버린다는 푸념도 덧붙였다.
그래도 상원리는 영덕 창수면 신리2리와 갈천1리에 비하면 다소 나은 편. 영덕 창수령을 넘어 영해쪽으로 가다 왼편에 위치한 이 마을에 가기 위해선 4㎞ 이상을 걸어 들어가야만 했다. 지금껏 버스가 다닌 적이 없기 때문이다. 기암1리와 2리의 3.9㎞구간도 도로불량이란 똑같은 이유로 버스가 운행되지 않고 있었다. "아이들 초등학교 다닐때부터 매번 선거때마다 버스 다니도록 해주겠다고 공약하더니 아이들 장가 든 지금까지도 이 지경이야"
신리 2리에 사는 한 할머니의 지겨움에 찬 목소리였다. 과거 장보면 큰 길에서 버스에 내리자마자 머리에 짐짝을 이고 십리길을 걷던 것이 이젠 조그만 짐수레를 이용하는 것으로 바뀌었을뿐 교통의 사각지대는 여전한 것. 다만 최근 도로정비가 조금씩 진행되면서 내년쯤엔 안 들어오겠느냐며 황소처럼 기대하고 있었다.
딱하기는 버스 운영업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봐도 마찬가지. "자본이 2억여원이나 잠식됐어요.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입장입니다" 영양버스 전무인 이상일(59)씨의 푸념이다. 팔려고 내놓아도 봤지만 아무도 덤비질 않는다는 말도 했다. 지난해 비수익노선에 대해 정부로부터 3억1천여만원이란 지역 최고 액수를 보조받기도 했지만 운영 여건이 변하지 않는 한 적자 행진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었다.
물론 좋은 때도 있었다. 91년 인수 당시는 영양 인구도 현 2만3천여명의 두배나 상회한데다 96년까지 존속돼온 경로 승차권 수입 대금 등 재원이 만만찮았었다는 것. "관에선 어떤 식으로든 우리들을 구슬려요. 선진국은 비수익 노선에 대해 70%까지 보조한다면서 언젠가는 외국 수순에 맞춰 주지 않겠느냐고 감언이설을 늘어놓기도 하고요"
공익성을 도외시하기도 어렵다던 이씨가 마지막으로 기대하는 진짜 '존재의 이유'인 셈이었다.
어쨌거나 이같은 시골 버스업자와 이용객의 줄다리기는 '솔로몬의 지혜'를 필요로 하는 쉽지 않은 숙제로 남을 성 싶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미 노인들과 등·하교 학생 등 우리의 과거이자 미래인 사회적 약자들이 주 이용대상이 돼 버린지 오래인 촌 마을 버스엔 이들에 대한 배려에 소홀해 온 현대인을 향한 소리없는 꾸짖음이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글:裵洪珞기자 사진:李埰根기자〉
---시장나들이 할머니 승객
영양읍에서 타 가곡 1리에서 내린 버스 안에서 만난 한 할머니. 영덕 영해에서 홍게와 멍게 등 30만원 어치 어물(魚物)을 사, 시외 버스에 올라 영양에 내려 다시 가곡가는 버스를 타고 내려 물건을 풀어놓고 1박2일간 판다. 5만원 이문보려 닷새마다 나선다니 73세 노인이 80㎏가 족히 넘어 보이는 물건을 5일마다 들고 내리기를 각 세 차례해야 하는 셈. 내려 놓고는 숨겨논 리어카를 이용, 이동의 편의를 꾀하기도 한다. 짐이 많아 미안한 듯, 내리면서 기사에게 차비의 세배인 3천원을 건네는 요령도 보이는 할머니. 억척스럽던 우리네 시골 어머니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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