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장애인의 아버지' 이태영박사

입력 1999-04-27 14:35:00

창파(滄波) 이태영 박사는 일본 동경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1956년경에 귀국, 대구맹아학교 교감을 거쳐 1961년에는 오늘날 대구대학교의 전신인 한국사회사업대학을 설립했다.

나는 대구남중의 교장으로 재직중 한국사회사업대학에 경제학 강의를 나가면서 당시 학장이던 이박사도 종종 만나게 되었다. 하루는 아침 일찍 이태영 박사를 찾아갔는데, 맹아들의 기숙사에서 그들과 함께 자고 식사도 같이 하며 100명이 넘는 맹아들을 한식구처럼 거느리고 사는 것이었다.

세상에 이처럼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들에게 정을 쏟는 훌륭한 사람도 있구나 하고 깊은 감명을 받고는 그후로는 이박사를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었다.

1988년 8월의 일이었다. 이박사가 몸이 아파 연세대 부속병원에 입원을 했다는 소리를 듣고 문병을 간 일이 있다. 이박사는 병상에 누운 채 입으로는 음식을 넘길 수가 없어 링거병을 달아 목구멍으로 죽물을 넘기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눈물을 흘리며 간병 중이던 부인에게 메모지와 연필을 달라고 해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적어서 건네주는 것이었다. 메모지에는 '내가 목이 완치되면 중국 서간도 용정에 가서 맹아학교를 세울 계획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그 글을 보고 눈을 비비며 다시 읽어 보았다. 참으로 놀랄 일이었다. 병상에서 일어나기도 어렵겠는데, 서간도에까지 가서 맹아학교를 세우겠다니…. 정말 소문대로 '장애자의 아버지'구나 하는 생각을 곱씹으며 병원을 나온 적이 있다.

그후 이박사가 학생들의 시위를 피해서 미국의 병원으로 건너간 후 대구대학교를 경영하는 이사진도 바뀌었다.

창파 이태영 박사는 살아 생전에 장애인 교육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했을 뿐 아니라 사회복지운동의 역군을 기르기 위해 대구대를 설립했던 것이다.

날이 가고 달이 가면서 이박사의 높은 뜻이 잊혀져 가는 것이 안타깝게 여겨지곤 한다. 이러한 때에 그분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창파 이태영박사 기념사업회를 결성했으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아무쪼록 기념사업회가 나날이 발전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 경 희 (가야대 총장)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