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새대입 바람 '소용돌이'학교

입력 1999-04-22 00:00:00

2002학년도가 되면 과연 특기나 분야별 재능만으로 대학에 입학할 수 있을까. 지난달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대학 모집인원의 40%를 특별전형으로 선발한다고 발표했다. '한 우물'만 파면 대학문은 활짝 열린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첫 해당자인 고교 1학년생 가운데 여기에 기대를 거는 학생은 거의 없다. 대학이 입학을 승낙할 정도의 특기를 갖추기에는 이미 늦었고 수상경력, 국가공인자격증 등 특별전형 조건에 맞추기도 극소수를 제외하곤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학력이 대학진학의 절대조건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실시하는 특기·적성 교육은 당연히 겉돌 수밖에 없다. 각 학교는 이달 들어 정규수업이 끝난 뒤 100분 안팎의 특기·적성 교육을 시작했으나 한결같이 절름발이 교육에 그치고 있다.

개설된 강좌는 크게 나눠 두 가지. 볼링, 댄스, 테니스 등 레크리에이션 성격이 아니면 외국어, 논술, 컴퓨터 등 입시와 관련된 것들이다. 학생들도 휴식이냐 공부냐로 갈라진다.

실제 한 남고의 경우 21개 특기·적성 강좌 가운데 컴퓨터 관련이 5개, 영어관련 6개, 논술관련 2개 등으로 신청학생의 61%가 이를 선택했다. 28명은 아예 강좌를 신청하지 않았다. 한 여고의 경우 강좌를 듣는 653명 가운데 3분의1인 232명이 컴퓨터를 택했고 또다른 3분의1은 논술, 어학관련 수업을 받고 있다.

김모교사는 "1주일에 한두 시간 수업해서 특기나 적성을 발굴한다는게 말이 되느냐"며 "입시용이나 기분전환용 수업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요즘 고교 1학년인 83년생들은 바뀐 입시제도의 혼란에 빗대 스스로를 '실험용'이라고 부른다. '제2의 왕따'라는 얘기도 있다. 고교 때부터 죽도록 공부하고도 대학졸업 후 곧장 실업자로 전락하는 75년생들을 흔히 '왕따'라고 부르는데 비유한 것.

특별전형의 문이 넓어진만큼 일반전형은 좁아져 외부에서는 "입시지옥에서 해방됐다"는 얘기를 듣지만 실제는 더 공부에 매달려야 한다. 게다가 1년 365일을 시험과 평가로 만드는 수행평가는 주위에서 알지 못하는 사이에 모든 학생들을 또다른 지옥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번 매일신문사 설문조사에서 '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이란 주관식 질문에 대한 학생들의 응답은 일그러진 학교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한 남자고등학교의 경우 1학년 80명 가운데 41명이 "과제물이 너무 많다"고 하소연했다. 또다른 한 남고에서는 25명의 학생이 "모든 것을 수행평가와 연관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불평했다. "존다고 감점하지 말아달라" "수행평가로 겁주지 말아달라" "너무 점수만 따지지 말아달라" 등의 내용이었다.

한 여고의 경우 응답자 84명 가운데 무려 59명이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해 달라"고 답했다. 수행평가 결과가 학기별, 학년별로 발표됐을 때 일어날 수 있는 학생, 학부모의 불신과 시비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한 여학생의 불만은 탁상에서 만들어진 제도와 현실간의 괴리를 그대로 보여준다. "주위에선 이제 놀 수 있어 좋겠다고들 하는데 실제로는 공부 때문에 숨이 턱턱 막힌다. 왜 우리가 제대로 검증되지도 않은 새 제도의 희생양이 돼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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