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비양심에 허탈

입력 1999-04-21 14:36:00

경북대 물리학과 명예교수인 박동수(73.대구시 동구 신천동)씨는 지난 달 초 대구시 동구청으로부터 종량제 봉투가 아닌 일반 비닐봉지에 쓰레기를 넣어 버렸다며 과태료 10만원을 내라는 통보를 받았다.

증거물은 음식쓰레기와 드링크병 등이 뒤섞인 봉지안에서 발견된 편지 한 통. 발신자는 미국 물리학회였고 수신자는 박씨였기에 박씨는 꼼짝없이 쓰레기 무단투기자로 지목됐다.

하지만 박씨는 쓰레기를 버렸다는 구청의 통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과태료 10만원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자신을 포함한 가족들이 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린 사실이 없었기 때문.

박씨는 과태료처분과 관련, 이 달 초 구청에 이의신청을 냈고 법원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교수까지 지낸 제가 쓰레기봉투값이 아까워 몰래 쓰레기를 다른 곳에 버리겠습니까.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저의 주장을 받아들여주지 않는 구청의 처사도 야속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이웃에게 돌리는 얌체행위가 더 실망스럽습니다"

박씨는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사람이 쓰레기를 불법으로 내다버리면서 자신의 편지를 집어넣어 증거물로 삼으려 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너무나 억울한 느낌이 들어 종이를 잘게 부수는 파쇄기를 구입, 잘못을 뒤집어 씌우는 '비양심'에 다시는 말려들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구청에서는 일단 내린 처분에 대해 번복하기 힘든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웃을 믿고 신뢰하던 제 마음이 예전 상태로 되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박씨는 건전한 시민정신이 못내 안타까운 듯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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