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막히는 수업 한시간 내내 긴장

입력 1999-04-20 00:00:00

2002학년도부터 대입제도가 크게 다양화된다.

이에 맞춰 고교 교육 방식도 전면적으로 바뀌고 있다. 특기.적성교육이 강조되고 시험성적 뿐만 아니라 사고능력, 인성까지 점검하는 수행평가가 이달 들어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그러나 새 제도는 종전 입시제도의 문제점을 일소할 수 있는 획기적인 장점과 목표의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교육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한계를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다. 학교교육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문제점 중심으로 짚어본다.

'5교시 윤리시간. 경례와 함께 교실에는 팽팽한 긴장이 감돈다. 선생님의 입에서 무슨 질문이 떨어질까. 1학년 전체를 가르치는 윤리선생님은 시간당 5명 정도씩 질문해야 한 학기 수행평가가 가능하다고 했다.

중간중간 질문이 던져지고 선생님은 상.중.하를 표시한다. 오후의 나른함을 이기지 못한 한 녀석은 졸다 들켜 1점을 감점당했다. 오늘도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숙제를 마지막으로 수업이 끝났다'

수행평가가 시행된 이후 달라진 교실 풍경이다. 교사의 농담은 거의 사라졌고 학생들은 농담은 커녕 졸거나 삐딱하게 앉을 수조차 없다

. 수업태도 하나하나가 점수로 매겨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언제 질문이 날아올까 한시간 내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형편이다.

점심시간에 만난 ㅇ고 1학년 박모군은 "농구나 축구처럼 힘든 운동은 엄두도 못 내고 그저 산책이나 한다"고 말했다. "자칫 수업시간에 고단해지거나 졸릴까 걱정스러워서"라며 "수행평가 때문에 피가 마른다"고 털어놨다.

힘든 건 학생들만이 아니다. 1학년 관련 교사들은 몇차례씩 연수와 교과별 회의, 토론, 수정을 거쳐 수행평가 방안을 만들었지만 학생과 학부모가 공정성에 시비를 걸어올까 우려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주관적 평가에 대한 불신을 사지 않기 위해 수업태도를 관찰하고 질문을 하고 쪽지시험을 치고 과제물을 내고. 학기 내내 끝도 없이 일을 해야만 하는 실정인 것이다. 과목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를 높이는 방법을 연구하거나 학생들의 마음을 읽는 일은 자연히 뒷전이다.

ㄱ여고 한 교사는 "학생들에게 무슨 말만 꺼내면 수행평가와 연결되느냐는 질문부터 한다"며 "모든 것이 점수와 연결되기 때문에 사제간의 인간미는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고 탄식했다.

이같은 부작용은 수행평가를 본격 실시하는 시기에 따라 학교별로 이르고 늦은 차이가 있을 뿐 조만간 모든 고교에 일반화되리라는 게 현장 교사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고교 1년생들이 학교를 나서는 시간은 오후 5시 전후. 지난해까지 보충수업에 자율학습에 오후 8시가 넘어야 하교하던 선배들에 비하면 외견상 공부에서 해방된 조건이다. 하교 후 특기나 적성을 살리는데 힘을 쏟기 충분해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선배들보다 몇 배 더 힘들다. 집에 돌아온 학생들은 곧장 학원으로 향한다. 물론 논술, 영어, 수학 등 교과와 관련된 학원이다. 학원을 마치면 과목별 과제물을 하느라 진땀을 쏟아야 한다. 수행평가 실시 후 쉬운 과제를 내주는 과목은 하나도 없어졌다. 부모들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을 정도다.

과제가 끝나면 다음 날 수업준비. 진도에 맞춰 참고서를 공부하고 예상되는 질문과 대답을 만들어 두어야 한다. 1주일에 서너번씩 치러지는 쪽지시험도 수행평가에 반영되기 때문에 대비에 소홀할 수 없다.

입시공부에서 해방되리라 기대하던 고교 1학년생들은 그야말로 365일 내내 시험과 평가 속에서 지낼 수밖에 없게 됐다. 특기나 적성만 뛰어나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는 얘기는 극소수의 몫일 뿐 중학교 때 재미있던 학교는 이제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金在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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