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평론가 김홍희씨 나혜석화가 재조명

입력 1999-04-19 14:11:00

개화기에 활동한 화가 나혜석은 삶과 글에서는 페미니스트였으나 그림에서는 단순한 여성 작가였을 뿐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미술평론가 김홍희 박사는 17일 서울산업대에서 열린 한국근대미술사학회춘계 연구발표회에서'나혜석의 양면성: 페미니스트 나혜석 대 화가 나혜석'이라는 논문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김 박사는 계몽적 여성 운동가이며 퇴폐적 자유연애자라는 모순적 양면성으로 나혜석의 화업이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다면서 그의 작품 세계를 페미니즘과의 관계 속에서 재조명했다.

나혜석은 '김일엽의 하루'(1920), '개척자'(1921) 등 초기의 목탄화를 제외하면 붓을 꺾을 때까지 일관된 주제로 풍경화와 인물화를 추구했다.

그의 전성기는 1920년대. 1921년 제1회 서화협전에 '풍경', '정물'을 출품하고 다음해 제1회 조선미전에 '봄', '농가'를 출품해 입선했다. 1923년 이후 수년간 조선미전에 건축물을 소재로 한 풍경화를 냈다.

김박사는 그의 풍경화가 아카데미즘과 인상주의의 절충양식이었으며 동시대 남성 작가의 작품과 구별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무희'(1927~8), '자화상'(1928), '부군의 초상'(1928) 등 인물화도 뚜렷한 개성이나 성적 감수성을 보이지 않는 평범한 그림들.

따라서 나혜석이 글로는 신여성으로서의 자유평등 사상과 페미니즘을 표방했지만 그림에서는 메시지 전달보다 조형적 탐구를 앞세우고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

김박사는 나혜석 미술의 이념적 모순을 페미니즘에 깃든 이중성으로 이해했다. 나혜석이 가부장제를 공격하면서도 부계적 가족 이데올로기에 굴복하는 양면적 얼굴을 가진 가정적 페미니스트였다는 것이다. 이혼과 자식에 대한 태도가 대표적인 본보기.

김박사는 나혜석의 그림이 페니미즘과 무관할 뿐만 아니라 철저히 비여성적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페미니즘의 가능성이 엿보인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당시 열등한 미술로 치부되는 여성적 유형의 그림을 그리지 않은 것을 인간평등을 주장하는 인본주의 페미니즘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문학과 달리 70년대에 와서 미술계에 페미니즘이 거론됐기때문에 나혜석의 그림의 이념적 모순을 논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고 시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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