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80년전 4월13일. 상하이(上海)에서는 이동녕(李東寧) 초대 임시의정원(議政院)의장(국회의장)으로부터 "지금부터 이 나라는 대한제국이 아니라 민간인이 주도하는 대한민국입니다".
이 나라 법통의 시초는 이처럼 감격의 눈물과 함께 이역만리에서 선포됐다. 1919년 오늘. 임시정부의 선포는 망명지사들의 손에 의해 공화정(共和政)이 수립됐음을 세계에 알렸던 의미깊은 일로써 당시 동아시아에서도 몇안됐던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출범을 알린 것.
임시정부수립 80주년을 맞아 서울의 세종문화회관을 비롯, 중국의 상하이와 충칭(重慶)에서도 현지거주 독립유공자 후손 등의 주관으로 성대한 기념식이 있었다.
그동안 정부에서는 나름대로 임정의 법통을 강조하기 위해 애써왔다.
김영삼(金泳三) 정부시절인 93년 8월4일엔 박은식(朴殷植.25년 임정 2대대통령), 노백린(盧伯麟.23년 임정 국무총리), 김인규(金仁圭.20년 임정 의정원부원장), 신규식(申圭植.21년 임정 국무총리), 안태국(安泰國.20년 테라우치총독 암살미수사건으로 징역6년형)의사등 선열 5위의 유해를 고국에 모셔오기도 했다.
풍찬노숙(風餐露宿)의 간난(艱難)을 즐겨 청했던 이들의 유택은 상하이 만국공묘(萬國公墓). 식민지, 조국국민들의 신산(辛酸)을 순국후에도 이처럼 황량한 외국의 묘역에서 대신 삭였던 것.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지난해 3.1절 격려사에서 '이 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받드는 유일한 합법적 정부'로 규정했다.
그리고 '이제 이 땅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시가 실현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김영삼정부는 93년 자신의 문민정권을 곧바로 김구(金九)주석의 상하이임정으로 연결시켰다.
두 정권의 임정해석과 관련, 특유의 논리적 도그마는 없었는가. 먼저 새롭게 인식할 일은 임정의 법통정신인 통일, 민족, 민주와 자유, 정의, 진리의 진정한 의미구현에 있을 것이다. 정권의 정통성 부여는 역사의 몫일 뿐.
〈최창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