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노 게이치로 소설 '일식'번역 출간

입력 1999-04-07 14:13:00

일본 열도를 흥분케한 히라노 게이치로(平野啓一郞)의 소설 '일식(日蝕)'이 우리말로 번역돼 '문학동네'에서 나왔다.

지난해 문예지 '신초(新潮)'에 투고한 데뷔작 '일식'은 약관 23세의 나이로 올해 120회째를 맞은 전통의 아쿠다가와상을 거머쥔 화제작. 대학 재학생이 일본문학 최고 권위의 아쿠다가와상을 수상하기는 무라카미 류 이후 23년만의 일이다.'히라노(平野)'선풍이라고 불릴 만큼 발간 몇 주만에 40만부가 팔려 '문학적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비평가들은 그를 '움베르토 에코'나 '미시마 유키오'와 비견할만한 일본문학계의 신성으로 추켜세운다. 이같은 찬사는 '일식'을 들여다보면 어느 정도 수긍할 만하다. 이 소설의 정체는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당시 종교와 사상, 교양을 깊이있게 훑어내는 지적 방대함으로 요즘의 신경병적인 폐쇄된 작은 소설들을 냅다 걷어차 버렸다는데 있다.

이 소설은 16세기 초반 한 초로의 도미니크회 수도사가 젊은 시절에 겪은 기적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시작된다. 정통 기독교사상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가진 주인공이 이단 종교와 연금술사를 접하게 되면서 영과 육의 일치라는 비밀스런 기적을 경험한다는 줄거리. 작가는 소설의 배경이 된 당시가 육체와 영혼, 신과 인간이라는 이원론적 구분이 무한히 접근했던 시기로 20세기 이전에 있었던 단 한번의 예외적 시기라고 강조한다. 바로 달이 해와 지구사이 일직선상에 놓여 잠시 보이지 않는 일식현상에 비유해 소설을 풀어내고 있다.

특히 작품의 시간대를 리얼하게 그리기 위해 메이지(明治)초기의 한자어와 현대어 어미를 덧붙인 독특한 문체와 깊이 있는 사고, 큰 스케일 등은 이 소설의 장점으로 꼽힌다. 또 정교하면서도 난해한 스토리 전개에다 중세 유럽의 사상적 흐름과 이단의 종교철학들이 복잡하게 얽혀들어 지적 교양의 뒷받침 없이는 읽어내기 힘든 소설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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