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노라마 20세기문화(31)-네오클래식 발레

입력 1999-04-03 14:13:00

발란신이 본격적으로 안무에 뛰어들 무렵, 선배 안무가인 미쉘 포킨(1880~1942)은 '신낭만주의'를 부르짖으며 고전 발레의 전통에 반기를 들고 있었다.

그는 무용이 해석적이고 표현적이라고 주장했다.

"발레는 반드시 음악, 미술, 조형예술이라는 3가지 요소가 조화롭게 섞인, 개념의 예술적 통합체가 돼야 한다" 포킨은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고전발레에 대한 저항으로 맨발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발란신 역시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라고 할만한 무대변혁을 이뤘지만, 포킨과 달리 '발레의 본질적인 순수한 아름다움'에 끊임없이 접근하려했다는 점에서 '네오클래식(neoclassic) 발레의 창시자'로 평가된다.

외형적인 장치, 화려한 의상은 그의 무대에서 점점 배제됐다. 타이즈만 입거나 상반신을 벗고 무대에 오른 무용수들은 당시로선 대단한 센세이션이었다.

고전발레를 재현하면서도, 발란신은 음악의 도움만으로 순수한 발레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싶어했다. 마침내 그는 발레에서 줄거리조차 배제했고 추상발레를 확립시켰다.

혁명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았던 1923년. 어린 안무가 발란신은 탁월한 무대화가이자 친구인 드미트리예프와 함께 '젊은 발레의 밤'을 개최했었다.

거리의 포스터들은 이날 밤의 행사를 '시대의 정신에 따른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예고했고, 프로그램에는 '발레의 발전-쁘띠빠로부터 포킨을 거쳐 발란쉬바쯔까지'라는 부제가 붙었다.

발레의 역사는 이로써 쁘띠빠의 고전주의와 포킨의 신낭만주의를 거쳐 발란신의 신고전주의로 이어졌다.

〈申靑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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