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어협 실패는 영토잃은 꼴

입력 1999-04-03 00:00:00

우리 한국인에게 바다는 무엇인가. 우리들에게 바다는 레저를 즐기는 낭만의 대상이었으며, 기껏해야 밥상 위에 올라오는 고기를 잡는 곳 이상의 의미는 없는 것 같다.

역사적으로도 우리는 바다의 중요성을 모르고 지내왔다. 1492년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보다 650년이나 앞선 시기에 황해-남지나해-대한해협을 거쳐 일본에 이르는 해상권을 장악한 장보고의 해상경영은 지금 우리에게는 먼 나라의 전설 이상의 의미가 없다.

그 후에도 우리는 대륙을 향한 야망은 키워 왔을지 모르나, 바다를 정복하고 해양으로 진출하기 위한 웅지(雄志)를 품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

지금도 우리의 의식 속에는 대륙 지향적 인식이 지배적이다. 한반도의 지형을 대륙을 향해 포효(咆哮)하는 호랑이의 형상에 비유하면서 긍지를 가지는 것도 대륙을 향한 열망의 발현이다.

이러한 우리의 대륙 지향성은 바다에 대한 무관심과 바다를 배경으로 한 생활 문화권의 천시로 이어졌다. 뱃놈, 뱃사람, 섬놈 등으로 표현되는 것들이 그것이다.

--우리는 대륙국가인가

그러면 우리는 진정 대륙국가로서의 조건을 가지고 있는가. 지형적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에 둘러 싸여 있는 반도국가이다. 국경선도 대륙과 접하고 있는 부분보다 바다와 접하고 있는 부분이 몇배나 길다.

3천개 이상의 섬을 가진 세계 유수의 섬나라이기도 하다. 이러한 지형적 조건으로 본다면 우리는 분명 대륙국가가 아닌 해양 국가적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반도국가이면서 대륙국가를 자처하는 나라는 한국이외는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왜 대륙지향적 국가관이 형성된 것일까. 그것은 중국의 영향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문명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문명의 중심지에 가까워지려는 의식이 대륙지향적 국가관을 형성하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근대 이후 문명의 중심은 유럽과 미국으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새로운 문명의 중심지를 향한 해양지향적 국가가 되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까지 대륙지향적 국가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결과론적이지만 근대이후 우리가 일본 등 해양국가의 세력권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도, 결국 바다를 등한시하고 몰랐기 때문은 아니었는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바다는 국가발전의 원동력

국가 발전의 기본전략은 그 나라가 처한 환경과 조건을 효율적으로 살려나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인구가 많은 나라는 인력개발, 자원이 많은 나라는 자원개발, 산지가 많으면 산을 이용한 국가발전 전략이 세워져야 한다. 우리 나라가 처하고 있는 해양 국가적 성격을 인정한다면, 우리의 기본발전 전략은 해양 지향적이어야 한다. 과거부터 해양 국가의 발전의 원동력은 바다에 있었다.

영국, 스페인, 포르투칼, 덴마크가 그러했다. 미국이 세계적인 국가로 성장한 것도 서부 개척의 연장으로 태평양 진출을 이룩한 이후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발전의 당위성도 대륙이 아니라 바다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해양국가인 우리는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해양 지향적 국가전략을 가진 적이 한번도 없으며, 오히려 바다를 경원시 해왔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인식의 대전환을 해야 한다.

송충이가 솔잎을 먹어야 살듯, 해양 국가로서의 한국은 바다를 국가 발전의 터전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가 바다를 알고 해양 정책에 대한 국가적 비전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이번의 한일 어업협상의 실패는 단순한 어획량의 감소가 아니라, 국가발전의 기본 터전을 잃은 것이다. 해양국가가 바다를 잃고 어찌 살기를 바라겠는가.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바다를 찾기 위한 한일 협상의 파기, 재협상도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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