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제석봉(대구효성가톨릭대 교수)

입력 1999-04-01 14:11:00

"왜 사람 말을 그렇게 듣지 않아요"하고 아내가 불평했다. "듣고 있잖아. 당신이 한 말 처음부터 모조리 다 외워볼까?"하고 남편도 벌컥 화를 냈다.

우리가 한 말을 한 마디도 빼놓지 않고 외우는 데는 녹음기보다 나은 것이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코 녹음기가 아니다.

자기 개방은 정신건강의 첩경이다. 어떤 심리치료학파에서는 자기개방 그 자체가 치료라고도 했다.

부부도 막역한 친구같이 서로 자기 마음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을 수 있을 때, 가장 건강하고 멋진 부부이다.

자기 개방이 필요하고 중요한 줄은 알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을 털어놓고 싶어도 들어줄 사람이 없다. 듣는 것 같아도 대부분 건성이다.

그 정도로도 괜찮다. 핀잔이나 힐난을 받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간절하고도 절실한 소망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내 말을 내 입장에서 끝까지 들어줄 사람이다.

남녀공학이 되기 전, 신입생들에게 첫 수업을 할 때였다. 하도 맑고 고와서 '산소'같은 여자들 같다고 말했더니, 윗 학년들이 난리였다. "그럼 우리는 질소나 탄산가스냐"고 따져서 한바탕 웃었다.

기적은 사소하고도 일상적인 일들을 통해 일어난다. 상대방의 말을 상대방의 입장에서 경청할 때, 그의 마음에 조그마한 기적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아는가.

'성공한 사람들의 일곱가지 습관'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코비는 공감적인 이해를 '심리적인 산소'라고 했다.

우리 가정, 우리 직장의 분위기는 혹 질소나 탄산가스로 가득 찬 것은 아닌가. 상대방의 입장에서 경청하고 이해할 때, 우리는 그의 가슴을 신선한 산소로 가득 채우게 될 것이다.

〈대구효성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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