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시가지 서북쪽 30여리에 자리한 봉정사(鳳停寺). 이 절은 우리 옛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겐 메카로 불린다. 국내 가장 오래된 고려말 것부터 조선조 말까지의 각 시대 건축물들이 한 마당에 공존하는 고건축 박물관이기 때문. 지난 25일 취재팀이 가던 날도 봉정사는 서울 숙명여대 학생들로 붐비고 있었다.
이 절을 제대로 보려면 우선 두가지 기준에 의한 가람의 구획을 눈여겨 둘 필요가 있다. 한 기준은 지반의 높낮이. 이것에 따라 3개 층으로 구분된다. 각각 가슴 높이 만큼씩 차이 진 3개의 지반이 마련되고, 그 위에 서로 다른 3개의 공간이 형성돼 있는 것이다.
맨 윗 공간은 불전이 자리한 곳이고, 맨 밑 공간에서 누하문(樓下門)을 통해 두번째 공간으로 올라서면 그곳은 절 마당. 이때 통과해야 하는 누하문은, 그 전 시대 사찰 건축에 일반적이었던 중문 대신 도입된 것. 누하문이 중문을 대체한 것은 고려말~조선초였으며, 봉정사의 이 누하문은 그 전형으로 알려져 있다.
지반을 3단계로 나누고, 그 각각에 독립적 역할을 맡긴 것은 그 지형적 특성을 종교적.건축적 배려와 합일시킨 결과일 터. 봉정사는 해발 574m의 천등산(天燈山) 남쪽 기슭의 다소 가파른 290m 능선에 자리 잡은 것이다.
가람 내부를 구획 짓는 또하나의 수단은 건물 배치. 전체 가람은 본절과 서쪽 암자(지조암), 동쪽 암자(영산암) 등 세 덩어리로 크게 구분된다. 이 대칭 구조 역시 우연은 아닐 터이다. 여기에다 본절 역시 또하나의 구획을 안고 있다. 크게 보면 맨 윗쪽에서 남향해 있는 불전들, 맨 서쪽에서 동향해 시립한 '고금당', 맨 동쪽에서 서향해 엄숙한 '해회당' 등이 형태로 마당을 둘러싼 형상. 그러나 그 마당 한복판에 '화엄강당'이라는 또하나의 건물을 세움으로써 다시 두개의 영역으로 구획하는 것이다.
이 여러 건물 중에서 우리나라 현존 최고(最古) 목조물로 주목받는 것은 극락전. 72년도의 해체.복원 때, 1200년도 전후에 건립된 고려시대 것으로 확인됐다. 가로(앞면) 3칸, 세로(옆면) 4칸 집. 그러나 앞면 3칸이 다른 절과 달리 문으로 돼 있지 않고, 복판칸은 판자문, 양쪽 두칸은 조그만 살창틀로 막혀 있는 것이 이채롭다.
이 건물은 바로 인접해 같은 높이에 나란히 서 있는 대웅전과 비교하면 특징이 더 적나라해진다. 극락전은 국보, 대웅전은 보물이다. 또 극락전은 아미타불을 모셨고,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셨다. 전자는 고려 때 것으로 확인된 반면, 후자는 고려말 것인지 조선초 것인지 아직 분명치 않다.
또 극락전은 맞배지붕, 대웅전은 팔작지붕이다. 기와집 등에서 우리가 흔히 보는 것은 지붕이 동서남북 네개의 면으로 구성된 것. 이것은 우진각 지붕이라 불린다. 이에 비해 맞배지붕의 면은 앞면과 뒷면 두개 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옆면은 자연히 지붕 사이의 삼각 벽면을 이룰 터. 그러나 팔작지붕은 또 달라, 우진각 지붕 처럼 옆면에도 지붕이 있되, 꼭대기 밑 일부는 맞배지붕 처럼 벽면을 이루고, 그 밑에서 지붕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처마끝을 쳐들게 함으로써 멋을 낸다극락전이 주심포식인데 비해, 대웅전은 다포식인 점도 큰 차이. 집은 기둥 부분과 지붕 부분으로 이뤄지지만, 이 둘을 잇는 '공포'(木共包)라 불리는 부분이 어떠냐에 따라 또 구분진다.
이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으면 주심포식, 그 사이에도 있으면 다포식이다. 공포는 장식적이기도 한 만큼, 다포식은 자연히 더 화려하다.전문가들에 따르면, 60년대까지도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알려져 왔던 부석사 무량수전이 주심포계의 첫 완성된 모습을 보인다.
이에비해 봉정사 극락전은 주심포식이되, 그 부속물들에서 삼국시대 유형이 많이 발견되고, 기둥 꼭대기(주두)는 통일신라 때 흔적도 갖고 있다. 더 앞선 시대 것이라는 얘기.
반면 이곳 대웅전은 우리 다포식 공포가 완성된 모습을 보이는 첫 케이스이다. 다포식은 요.금나라서 성행하던 것이나, 이 대웅전에 와서 국내의 첫 완성형을 구현하고, 그 품격 역시 최고로 평가된다는 것.
집안 천장도 극락전과 대웅전이 대조를 이룬다. 전자는 천장이 아예 없어, 바닥에 부처님을 모시면서는 '닫집'이라 불리는 별도의 불상 지붕을 만들어 덮었다. 반면 대웅전은 천장이 있고, 그 일부를 함몰시켜 불상의 지붕으로 삼았다. 덧붙여 주목할 것은, 극락전의 닫집이 국내 다포식 중 가장 앞선 것일 가능성이 제기돼 있다는 점이다.
이들 건물들의 앞쪽에 시립하고 서 있는 고금당.화엄강당은 대체로 1600년도 전후의 건축으로 꼽힌다. 또 해회당은 조선 말기 건축 양식의 증언자이다. 이래서 봉정사가 고건축 박물관이라 불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도 전문적인 이야기. 아무려면 어떠랴. 더 깊숙이 가슴을 보다듬는 또다른 것이 있는 것을. 그게 무엇일까? 몇번을 되짚어 본 뒤에야 편안함이리라 정리했다.
무엇이 우리를 편안케 하는가? 어느 전문가가 설명했다. "이 절에서 정말 뛰어난 것은 자연과 인공의 조화이다. 앞쪽 100여리의 수평 광야를 무릎 아래 두고, 가람의 모든 높이들이 이에 맞춰 일정하게 절제됐다. 선의 수평적 흐름과 배치의 정연성이 자연과 함께 봉(鳳)이 머무는 양상을 아울러 낸 것이다".
그럴 것이다. 바로 그것, 사람을 편안케 해야 좋은 건축이리라. 그런 면이라면 동쪽의 암자 영산암이 더 풋풋했다.
〈글.박종봉기자 사진.정우용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