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개혁교육의 현장-(9) ECA 공립고교

입력 1999-03-30 14: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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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반 연기과정.커다란 강당에서 학생 6명이 의자 한 개를 가운데 놓고 빙빙 돌고 있다. 이윽고 한 명씩 의자에 앉아 특정한 자세를 취해본다. 신문보는 시늉, 조는 흉내, 밥먹는 모습.... 학생들이 취한 동작은 모두 달랐다.

이날 수업주제는 '내 식대로 하기'. 의자에 앉아서 할 수 있는 동작을 제각각 해보는데 다른 학생의 동작을 흉내내거나 같은 동작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게 조건이다.

다양한 동작, 다양한 표정, 다양한 모습을 연출하는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무용반 발레과정.

고급과정이어서 그런지 남학생 3명과 여학생 2명이 전부다.

교사가 가장 잘하는 학생이라고 손꼽은 마이클 워커군. 앞으로 무용을 전공하고 싶다는 그는 그러나 걱정도 많았다.

무용수가 되기 위한 경쟁률이 여간 세지 않아 좋아하는 춤을 추며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얘기다.

"뉴욕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춤추는 뮤지컬 무용수가 꿈이지만 그게 어려우면 예술학교 교사나 예술단체 매니저가 되는 것도 각오하고 있어요" 어쨌든 ECA에서 배운 무용을 평생 삶의 길로 삼을 것이라는 마이클의 각오다.

마이클군처럼 이 학교에는 전문 예술인의 길을 걷는 미완의 대기(大器)들로 가득하다. 98년 현재 학생은 모두 190명. 36명의 교사들이 이들의 내일을 열어주고 있다.

이 학교도 역시 다양성을 내세운다.

무용, 음악, 창작, 연극, 미술, 미디어 아트, 예술사 등 7개 과목이 있으며 그중 하나를 학생들이 선택해 집중적으로 연마한다.

무용에는 근대무용, 발레, 재즈무용, 유럽무용, 일본무용을 비롯한 세계무용, 탭댄스 등 모두 11개 과정이 개설돼 있다.

음악에는 합창, 재즈, 작곡, 이론 등 18개 과정이 있고 창작과목은 시, 소설, 수필, 희곡 등 7개 과정으로 이뤄져 있다. 창작과 학생들은 수업중 쓴 글을 매년 발간하는 문예지에 발표하기도 한다.

연극은 연기, 연출, 음향, 대사, 20세기 연극사 등 14개 과정으로 채워져 있고 미술은 유화를 비롯해 3차원 디자인까지 모두 17개 과정으로 구성돼 있다.

미디어 아트는 카메라촬영, 음향작업, 편집기술 등을 배우는 과목.

자신이 좋아하는 예술양식이 예술사적으로 어디에 위치하며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 알아보는 예술사에도 학생들이 몰린다.

학교 자체가 고급과정인 만큼 기능과 창의력을 다같이 중시하는데 교실에서 만난 학생들의 열의와 기대는 놀라울 정도로 컸다.

"작곡을 해서 직접 공연을 해봤어요. 그때 난생 처음으로 나 자신은 물론 학교를 사랑한다는 생각이 물밀듯이 들더군요" 음악과목을 전공하고 있는 메리 하레리양의 말이다.

연극전공의 메리사 헤이즈립양은 "힘드는 만큼 아주 재미있어서 좋아요. 무엇보다 맘에 드는 것은 내일의 유망주들과 함께 무대에 선다는 점입니다"하며 ECA는 최고라고 자랑했다.

"제가 항상 원하던 것을 할 바로 그 기회를 ECA에서 찾았어요. 늘 춤추고 싶었거든요. 지금은 훨훨 날고 있다는 느낌까지 가끔 듭니다" 무용과정의 캐어린 길버트양은 이렇게 말했다.

"ECA가 없었다면 저에게 미래는 없었을 것입니다. ECA 수업을 통해 만든 작품집(포트폴리오)으로 시카고 예술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미술반 어느 교실에 게시된 편지를 통해 졸업생 저스틴 플레밍군은 미술전공 후배들에게 이렇게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고 있었다.

플레밍군처럼 졸업생들은 대개 직업 예술가가 되거나 예술교사로 일하고 있다. "고난도 예술기능을 배우고 싶은 학생들에게 이 학교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입니다. ECA에서 학생들은 규율과 열심히 배우는 자세, 예술에의 헌신 등을 배운 뒤 대학에 진학해 재능을 꽃피우고 있어요"

로버트 파커교장은 "설사 꼭 그렇게 되지않더라도 졸업생들이 배운 예술적 능력은 인생을 풍부하게 하는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라고 확신했다. 〈李相勳기자〉

--ECA 공립고교는

ECA는 예술재능이 있는 고등학생을 위해 9~12학년 과정을 개설한 공립 특별학교이다. 1972년 설립됐다.

정식명칭은 ACES ECA. 코네티컷주 중남부지역 교육 서비스센터(Area Cooperative Educational Services)가 운영하는 예술교육센터(Educational Center for the Arts)라는 뜻이다.

교사는 여러 군데에 흩어져 있다.

유대교 사원을 개축해 만든 본관에는 미술교실, 극장, 무용실, 음악실, 사진암실, 음향과 조명이 조절되는 특수교실, 대극장 등이 있다.

이에 더해 1990년 인근 소극장을 인수해 200석 크기의 극장 하나와 창작교실로 쓰고 있으며, 95년 미디어 아트 센터를 개소해 비디오 및 오디오 창작에 이용하고 있다.

방과후나 주말에는 극장을 포함해 모든 시설을 학생들에게 개방한다. 그래서 주말만 되면 각종 공연으로 학교가 오히려 더 붐빈다고 파커교장은 밝혔다.

이 학교는 오후에만 문을 여는 특별한 형태로 운영된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오후 1~4시 사이에 수업하고 있다.

학생들은 오전에는 다니는 고교에서 일반과정을 배우고 ECA에는 오후에 등교해서 예술과목을 연마한다. 98년 현재 재학중인 학생들은 뉴헤이번 시내 21개 고교에서 온 것으로 집계됐다.

이 학교에 들어가려면 먼저 다니고 있는 고교 교사를 통해 지원서를 내야 한다. 매년 2월 중순 원서를 마감한 뒤 시험을 치르는데 면접 및 실기 위주다.

평가항목은 기능, 열성, 집중력, 창의력, 행동력, 적응성 등 6개 분야.

입학하면 나이가 아닌 학력과 재능에 따라 적당한 학년에 편입하는 것도 특이한 점이다. 고학년에 편입하는 신입생이 있는 반면 입문과정을 닦는 고학년도 많다.과정을 모두 이수하면 예술과목 학점을 준다. 이 학점은 다니는 일반고교에 가산돼 졸업학점 평가에 정식으로 들어간다.

"연 4차례 학점을 평가해서 부모와 다니는 고교에 통보합니다. 낮은 학점을 받으면 재수업을 받아야 하고요. 원하는 학생들이 입학해서 원하는 과목을 배우는 탓인지 낙제생은 드물어요" 파커교장의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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