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4월만 잔인한 달인가. 막바지로 치닫는 이 3월도 그렇고 5월에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은 알고 있다.
담임을 주먹질 하고 아파트 관리비를 갉아 먹는 쥐새끼들이 득실거리고 농어촌 자금이 줄줄 새버렸다. 고등어마저 밥상머리서 사라지려는 찰나, 실업자금 8조3천억원 추가투입은 그저 솔깃할 뿐이다. 여기다 젊은이 수혈론(輸血論)까지 나왔다. 무언가 어지간히 급하긴 급한가 보다.
■현란한 新語천국
한 발 앞서 던져놓은 신지식인론이 여태껏 기둥세울 터 조차 마련하지도 못한 차제에 고승 대덕에 설법은 또 무슨 용골때 질인가. 도대체 될성 부르지 못한 일들이 될성 부르게 주위를 적셔대며 마치 불붙은 눈썹으로 여겨달라는 주문처럼 들리니 달마다 잔인하지 않을 턱이 없다.
국민의 정부라고 불렀다. 개혁하리라고 했다. 그렇지만 난무하는것은 무원칙. 공동정권이라는 미명아래서 불거지는 소수파의 한계는 인물 하나 고르는데도 그대로 적용됐다.
"부산이면 됐다"고 할 만큼 제 몫 찾기에 혈안이 된 목소리로 무슨 개혁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여전히 개혁논리를 압도하는 정치논리들. 눈 앞에 닥친 선거판만 보기 때문이다. 이런게 뒷걸음질이다.
일개 집안의 일에도 원칙을 좇아야 길과 맥이 있는 법이다. 길과 맥이 있어야 일에 효율과 깊이가 살아 난다. 그래야만 가정이 화목하고 편안해 진다. 하물며 나라 일에서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제 새끼만 감싸고 돈다고 개혁이랄 수는 없다.
■꼬리 내리는 개혁
작은 정부. 부처를 통폐합 하겠다고 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실효성까지 곁들이려니 힘이 너무 들어서 일까. 아니면 공무원들의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듣기 싫었던가. 개혁은 꽁무니를 뺀다.
독재정권의 상징으로 기분 나쁘다해서 없애버린 공보처를 마치 부활한듯한 국정홍보처. 여기에 기획예산처가 새롭게 얹혔다. 그러다 보니 예산 46억원만 후딱 날아가 버렸다.
몸집을 키우다보니 이만한 돈이야 대수롭잖겠지. 그러나 그렇게 큰 소리쳐가며 지난해부터 내내 닦달하던 민간기업에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은 이 순간 막을 내린거나 마찬가지라는 뜻일게다.
마치 나의 스캔들만 주접거리며 너의 불륜을 탓하는 보이지 않는 낯짝을 지닌 사람같다. 내 얼굴에 침을 스스로 뱉을 수 있는 용기마저 없으면서 믿는 구석이라야 힘 뿐인 사람같다. 그리고는 밀어붙인다. 문제는 밀어붙일때마다 밀리는 측이 있고 그것에 맛을 자꾸 들인다는 사실이다.
'DJ암'으로 한바탕 난리를 쳤다. 물증과 심증 사이를 정치인들은 잘도 넘나들며 오묘한 말장난으로 서로를 물고 늘어졌다. 의학적으로 암은 아직 그 정체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점을 노려서 다들 아전인수격으로 치고 받는 솜씨는 입신의 경지지만 결국 가슴의 멍은 누구 몫인가. 품고 있는 원한만 기회 있을때마다 내 밀줄 알았지 그것이 우리 정치의 앞날에 미치는 영향은 아랑곳 없다.
유성룡이 지은 '징비록(懲毖錄)'의 '징비'라는 말은 시경의 "내 지난 날을 징계하여(懲), 앞으로 혹여 그런 일을 당할세라 삼가노라(毖)"고 한 문구에서 따온 것이다. 임진왜란에 대비한 율곡의 10만 양병주장을 무시해버린 결과 빚어진 유비무환의 수난상을 기록한 책이고 보면 그런 이름이 붙여진 것은 제격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유비무환의 교훈을 일깨운 대표적 고전으로 떠 받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허물 되새겨야
유비무환은 대책이다. 무슨 일에든 대책을 세워두면 지난날의 허물을 되풀이 하지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정부의 구조개혁 실종사건 같은것도 이런 원칙에 조금만 충실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게다.
이런 예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걱정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의료보험 통합, 국민연금, 사법부 개혁, 햇볕정책, 실업자노조 합법화등 등. 과제는 현란할 정도다.
수혈론으로 젊은이나 늙은이나 '피'에만 과민한 반응 보이는 맛이간 세태속에서도 지난해 한국을 다녀간 석학 하버마스의 "당신네들의 역사와 전통에 좀더 유의하는게 좋겠다"는 한 마디는 아무것도 아닌것 같으면서도 너무나 신선한 맛을 준다. 정작 우리에게는 분명 맛이 간 역사와 전통 보다는 신선한 역사와 전통이 숱하게 있을것인데도.
김채한〈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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