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토피아-대구시 북구 이성환씨네

입력 1999-03-24 14:04:00

"지난 여름 내내 아내의 병실을 단 하루도 뜰 수가 없었어요. 아내가 입원해있던 두달 내내 병실을 지켰어요. 부산까지 직장에 다니랴, 집안 살림하랴 눈코 뜰 새없이 바쁜 아내에게 내가 스트레스를 너무 주었던게 아닌가 후회도 되었구요"

대구시 북구 구암동에 사는 이성환(42·계명대 국제학부교수)씨. 이씨에게 지난 한해는 '내 마음먹은 대로 살기'에 바빠서 방치(?)했던 가정·가족의 무게가 무겁게 와닿은 시기였다.

허리를 졸라매며 힘겹게 살았던 어린 시절부터 키워온 소중한 꿈, '소(小)도서관'운동을 펼치면서 결혼하고도 계속 하숙집처럼 떠돌던 그를 이해하며 든든하게 받쳐주던 아내(이성한 부산 고신대교수·41)가 '뇌하수체 종양'에 덜컥 걸려버린 것이다.

"도저히 집에서 잘 수가 없었어요. 계속 병실서 자고…"

학교와 지역사회 주민운동에 파묻혀 잊고 살았던 '아내사랑'이 솟구쳐 목젖을 아프게 했다.

말로 따지고 들면 속이라도 후련하련만, 말없이 병상에 누워있는 아내에대한 깊은 속정과 말못할 미안함이 그의 발목을 병실에 붙들어 맸던 것이다.

"되돌아보면 결혼생활 15년 동안 온가족이 함께한 시간은 참으로 짧았습니다. 제가 퇴원하고부터 남편의 귀가 시간이 훨씬 앞당겨졌어요. 가장 반기는 사람은 저보다 아들이구요"

아내 이성한씨는 티끌 하나라도 그냥 넘기기 힘들 정도로 사춘기 열병을 심하게 앓고 있는 중학생 아들 한슬이(16)가 언제부터인가 마음의 빗장을 여는게 고맙기만 하다.

"애들은 애들이잖아요. 다른 엄마·아빠들처럼 일없이 놀러도 가고, 같이 있기를 원하는데 아들은 직장과 지역사회에 아빠를 빼앗겼다고 여겼을 거예요"

아내의 퇴원후, 아무리 바빠도 밤마다 내주고 검사하는 '아빠의 숙제'를 통해서 부자간의 정은 새롭게 싹트고 있다.

"실은 제가 소도서관 운동에 결정적으로 뛰어든 것도 무심코 던진 아들의 말때문이었어요. 몇년전에 효목도서관 부근에 살다가 이곳으로 이사를 오니 동네에서 책볼 곳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3천500권으로 시작한 칠곡지역 주민도서관이 이제는 1만권의 장서를 갖추게 되었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즐겨찾는 생활의 장으로 바뀌었다. 일요일날이면 아주머니 봉사자들이 도서관의 문을 열 정도로 이교수가 만든 주민도서관은 칠곡 주민들 가슴에 깊숙이 다가왔다.

뿌린 만큼 거두고, 속이는 법 없는 흙처럼 살자고 언약한 이성환·이성한씨 부부는 먼훗날 아들 한슬이에게 이렇게 기억되기를 바란다.

"침침한 눈으로 아빠가 세운 도서관을 지키며 책을 내주는 우리 아빠를 한동안 미워했던 적이 있었지. 하지만 내 부모들은 흙처럼 진실했노라"고.

〈崔美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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