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선 일본양심 상징 거듭날까

입력 1999-03-24 14:09:00

400여년 전 임진왜란 때 왜군으로 참전했다가 귀화해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에 세거지를 정했던 김충선(金忠善, 당시 기록명 沙也可). 그의 이미지는 21세기 한일 관계를 열어 갈 '일본 양심'의 상징으로 확산될 수 있을 것인가? 그의 이야기가 일본 고교용 한 일본사 교과서에 올해 처음으로 실리고, 관련 활동 또한 활발해지면서 성과가 주목되고 있다.

작년에 처음으로 이를 다루기 시작한 우리나라 중학교 3학년 도덕 교과서는 가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르치면서 그의 귀순·귀화 관련 일화를 실었다. 그는 침략군의 선봉군으로 조선 땅을 밟았다가, 급박한 상황에서도 늙은 어머니를 업고 흐트러짐 없이 피난 가는 우리 농부 가족을 보고 성현의 가르침을 깨닫고 귀순했다는 것.

이에 비해 일본 교과서(고교 일본사A, 실교출판사)는 왜군에 붙은 조선인, 조선에 귀순한 일본인 등을 다루는 항목에서 김충선을 서술했다. 전체 180여 쪽 교과서 중 한쪽을 할애한 이 서술은, 그가 조선의 예의에 감동해 귀순한 뒤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침략정책을 비판하며 오히려 항일전에 참가했고, 조선측은 일본의 철포·화약·사격 등 기술을 배우기 위해 귀순자들을 우대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제국주의가 한국을 병탄하면서 일본은 이들 귀순자의 존재를 부정하고 적대시하는 말살정책을 썼다는 것.

이 교과서 게재 사실이 알려지자, 관계자들은 "북한 미사일 문제 등으로 일본에서 극우세력의 득세 흐름이 짙어지고 있는 이때에 평화와 양심의 상징인 그가 교과서에 수록된 것은 획기적인 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에 맞춰 14대손인 김재덕(金在德·80)씨는 한일 양국의 교사들이 김충선에 대해 보다 충분한 자료를 갖고 가르칠 수 있도록 참고서 격인 '사야가 한일 교과서 등장과 교류의 가교'(대구 서진출판사, 230여 쪽)라는 책을 최근 펴내기도 했다.

또 김씨에 따르면, 종전 연간 20∼30명에 불과했던 우록리 방문 일본인이 임진·정유 왜란 400주년이던 지난 92∼97년도 이후엔 1천여명으로 급증했다. 한국 관련지 답사 여행 프로그램에도 우록이 부산·경주 등과 함께 방문지로 자리잡았고, 일본 TV·신문 등의 취재도 잇따랐다.

학계에서의 관심도 높아져, 96년도에 '한일 역사 공동연구회'가 두 나라에서 공동으로 구성돼 월간 회보를 내고 있고, 지금은 양국 교사들이 입소해 관련 토론과 체험·연구를 할 수 있는 '교사관'을 세우기 위해 양국에서 각 5천명씩의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김씨는 이에대해 "김충선의 양심·평화의 정신을 한일 두나라 가교로 격상시키기 위해서는 정부나 보다 규모 큰 재단 등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朴鍾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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