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에서 'BC'(Before Christ)는 곧 '칼라스 이전 시대'(Before Callas)를 의미한다" - 프랑코 제피넬리(오페라 연출가).
적어도 오페라의 역사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동등한 위치(?)에 놓인 마리아 칼라스(1923-1977). 죽은 지 20년이 넘은 그녀는 아직도 음악애호가들에겐 흠모의 대상으로, 오페라 가수들에겐 넘어야 할 '산'으로 살아있다.
'예쁘진 않지만 극적 감흥이 풍부한 음성'을 지닌 칼라스는 완벽한 기교와 카리스마로 1950년대 전세계의 오페라 관객들을 굴복시켰다. 그러나 '여왕' 칼라스의 삶은 자신이 즐겨 불렀던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며'(푸치니의 '토스카' 중 절망에 찬 오페라 가수 토스카가 '그저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산 인생이었건만 왜 이다지 큰 시련을 겪어야 하는가'라며 절규하는 노래)처럼 비극으로 끝났다.
마리아 칼라스는 1923년 미국 뉴욕에서 그리스계 이민 부부의 딸로 태어났다. 음악에 천부적인 소질을 보인 어린 칼라스에게는 가수가 되려던 꿈을 딸을 통해 실현하려는 어머니가 있었다. 칼라스는 13세때 그리스로 가서 '왕년의 프리마 돈나' 엘리바 데 이달고를 만나면서 비로소 가수로 다듬어진다. 타고난 천재성과 '최고'가 되기 위한 의지로. 형편없는 뚱보에다 목소리도 특별히 예쁠 것 없는 칼라스는 마침내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1945년 무작정 뉴욕으로 돌아온 칼라스는 당대의 지휘자 툴리오 세라핀을 만나며 음악적으로 거듭난다. 단역조차 구하기 힘들었던 당시의 칼라스에게 세라핀은 '라 조콘다'를 맡겼고 1947년의 이 공연으로 '마리아 칼라스'란 이름이 전 세계에 알려졌다. 세라핀이 칼라스에게 '음악'과 '오페라'를 가르쳤다면 1951년 라 스칼라 공연을 계기로 만난 연출가 루키노 비스콘티는 그녀에게 연극적인 기술을 가르친 사람이다. 두 사람의 도움으로 누구도 흉내내지 못한 칼라스만의 스타일이 탄생한 것이다.
역경을 딛고 마침내 정상에 오른 칼라스. 그러나 영원할 것만 같았던 그녀의 영광도 선박왕 오나시스와 만나면서 비극으로 변했다. 자신의 열렬한 지지자며 후원자인 남편 조반니 바티스타 메네기니를 버리고 칼라스는 1959년 오나시스와 함께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다. 사람들은 '사랑을 얻은 마리아 칼라스가 예술을 잃었다'며 아쉬워했다. '완벽했던' 칼라스의 목소리는 이때부터 변질됐고 잇단 공연 실패로 '세기의 디바'는 비난의 표적이 됐다.
칼라스의 비극은 1963년 오나시스가 재클린 케네디와 결혼하면서 절정에 달한다. 이후 무대를 떠난 칼라스는 1977년 9월16일 53세를 일기로 마침내 세상을 떠났다. 사망원인은 수면제 과다복용. 사랑과 예술을 한꺼번에 잃은 여인은 고독을 견디지 못했고, 그녀가 남긴 예술과 비극은 영원히 '신화'로 남았다.
〈申靑植기자〉
-마리아 칼라스-전성기때 몸무게 100Kg
어려서부터 몸집이 크고 무턱대고 먹어대는 칼라스는 집안의 구박덩어리였다고 한다. 전성기의 칼라스는 100kg에 육박하는 거구였다.
그런 칼라스가 1952년 다이어트를 결심한다. 바로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영화 '로마의 휴일'을 본 뒤였다. 이후 2년간 이어진 피나는 다이어트 끝에 칼라스는 무려 37kg을 감량하는데 성공, 마침내 '미운 오리새끼'에서 '백조'로 변신했고 그토록 원했던 '헵번 스타일'의 옷을 입을 수 있게 됐다.
체중조절로 인한 목소리 손상을 우려한 사람도 많았지만 칼라스는 이후에도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칼라스의 음색이 차갑고 날카로운 느낌을 주는 것이 무리한 감량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여하튼 칼라스는 오드리 헵번 덕에 제2의 인생을 살게 됐지만 몸무게의 1/3을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종아리의 살만큼은 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칼라스가 평생 한번도 발목이 노출되는 의상이 필요한 '카르멘'을 무대에서 공연하지 않은 것은 유명한 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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