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개혁교육의 현장-홉킨스 중·고교

입력 1999-03-19 14:15:00

홉킨스 중·고등학교는 대학입시를 강조하는 곳이므로 지식전수가 수업의 핵심이다. 그런데도 주입식으로 가르치는 교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수업은 철저히 학생들 위주로 진행됐다.

9학년(우리의 중학교 3학년) 생물 수업시간.

교사가 질문하면 16명 학생들중 아는 학생이 대답한다. 교사는 그 대답에 보탤 것만 얘기해준다.

모두 모르면 그제서야 새로 배울 것을 알려주는데 그것도 한번에 다 가르쳐주지는 않았다.

학생들의 질문도 같은 식으로 처리됐다.

한 학생이 '항상성'이 뭐냐고 물었다. 교사는 "누구 아는 사람 없어요?"하고 오히려 학생들을 향해 되물었다. 세 학생이 손을 들어 그중 한 명이 대답했다. 교사는 그 대답에 약간 덧붙인 뒤 질문자에게 이젠 알겠느냐고 확인했다.

바바라 보스트교사는 "일방적 주입식보다 쌍방향 토론식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봅니다. 예습해온 학생들은 수업시간을 기다리게 됩니다. 몰랐던 학생들도 발표라는 방법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확실하게 제 것으로 만들게 되지요"하고 말했다.

실험도 학생들이 주도했다.

교실 뒷벽에는 곰팡이가 물, 소금물, 설탕물, 빵 등에서 어떻게 서로 달리 배양되는지를 실험하는 비닐봉지가 가득 붙여져 있었다. 학생들은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곰팡이가 배양된 정도를 재서 기록한다고 저마다 바빴다.

11학년 수학시간도 마찬가지였다.

교사가 문제를 줄줄 풀어가는 식으로 진행되는 우리와는 달랐다. 문제풀이에서 학생들이 답하지 않으면 그다음 과정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한 학생만 계속 답하게 하지도 않았다.

진도가 늦고 수준은 낮을지 모르겠지만 교사는 가르쳤는데 학생들은 모른 채 넘어가는 것은 이 반 9명 학생들중에선 없는 듯 했다.

주 3회 이뤄지는 12학년 정치학 수업.

11명의 학생들이 주제를 놓고 수업내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날 주제는 '클린턴 대통령은 스캔들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하나'였다. 스타 검사의 보고서가 인터넷을 통해 발표된 직후여서 온 미국이 이 문제로 들끓던 시기였다. 미리 얘기된 사항이었는지 학생들마다 뉴욕타임스 같은 신문을 갖고 나왔다.

인책 가부를 놓고 패가 갈려 학생들끼리 격론이 벌어졌는데 교사는 누가 먼저 손을 들었는지, 다음 발언자가 누구인지만 표시해줄 뿐 토론에는 간섭하지 않았다."수업이 끝나기 직전 잠깐동안 논평하는 정도이지요. 상대주장을 잘못 이해했다든지, 논리전개가 어색했다든지 하는 점들을 짚어줍니다"

학생들의 거수투표로 다음 토론주제를 '세금삭감과 사회복지'로 결정한 존 로버츠교사의 설명이다.

---전통 사립학교 전형-홉킨스 중·고

이 학교는 미국의 유서깊은 사립 학교의 전형을 잘 보여주는 곳이었다.

시내 서쪽 숲속에 안온하게 자리한 이 학교는 입구에서부터 외부인의 기를 죽인다. '1660년 창립'이란 푯말이 그것이다.

독립전 코네티컷 총독이었던 에드워드 홉킨스의 뜻에 따라 교실 1개의 남학생 문법학교로 시작한 이 학교는 1925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온 뒤 1972년 여자학교와 합쳐 7~12학년 과정의 중·고등학교로 성장했다.

건물 몇개 층을 세내 교실로 쓰는 경우가 많은 여타 학교와 달리 반듯한 학교 건물과 운동장을 갖춘 것도 자랑.

12만평 부지에 교실, 실험실, 대입상담실, 도서관, 강당, 식당 등을 갖춘 6동의 교사가 들어서 있다.

체육시설로는 축구장 및 야구장을 비롯한 운동장 6곳, 테니스장 11곳, 체육관, 수영장을 갖췄다. 자산가치로만 200억원이 넘는 부자학교이기도 하다.

수업료는 여간 많이 들지 않는다. 1명이 연간 1천800만원을 수업료로 내야한다. 여기에 책값 60만원, 과외활동비 24만원, 보험료, 체육장비값, 수학여행비 등이 별도로 들어가므로 과중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장학금제도가 잘 돼있어 97~98년 한해에 118명의 학생에게 수업료에 약간 못미치는 1천100만원씩, 모두 13억원의 장학금을 주었다.

학부모와 5천명에 이르는 졸업생은 물론 독지가들까지 들어가 있는 장학조직은 막강한 편이다. 토마스 로드 2세교장은 "지금까지 모은 장학기금이 150억원에 이릅니다"라고 자랑했다.

98년 가을 현재 교사 수는 콜럼비아, 예일, 프린스턴 등 유명대학 졸업자를 포함해 모두 96명. 학생이 609명이므로 교사 1인당 학생 7명꼴이지만 상담교사도 있고 해서 실제 반 평균정원은 14명쯤이다.

대학입시를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어 학과교육을 위주로 한다.

과목은 우리와 비슷해 고교의 경우 영어, 외국어, 역사, 수학, 과학, 예능, 체육 등이 필수.

그러나 영어 한 과목만 해도 그리스·로마 문학, 미국 문학, 러시아 문학,단테의 소설, 셰익스피어 작품, 근대문학, 현대문학 등 수십 과정이 들어있어 선택의 폭이 아주 넓다.

외국어는 2개 이상 배우는데 라틴어, 스페인어, 독어, 불어 등은 물론 이탈리아어, 러시아어까지 개설해놓았다.

특히 장래 대학공부에 도움이 되게끔 라틴어를 7학년부터 필수과목으로 배우도록 한 게 눈에 띄었다.

예능은 미술, 연기, 영화, 음악, 무용 등 5개 과정으로 나눠져 있는데 다양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음악과목의 경우 성악과정에 독창, 합창 등이 들어있고 재즈, 록 같은 과정도 개설돼 있다.

체육반에는 하키, 미식축구, 축구, 야구, 수영, 소프트볼, 테니스, 라크로스(하키 비슷한 구기), 레슬링 같은 종목이 망라돼있다.

오전 8시18분에 시작돼 오후 3시22분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은 다양한 과외활동을 즐긴다. 사회봉사, 컴퓨터, 사진, 연극, 요리, 호신술 등 25개 반이 있는데 보통 한 학생당 3~7개 반에 들어가 활동하고 있다.

로드교장은 "이 모든 게 어울려 대학입학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습니다. 지난 97년에는 졸업생 대부분인 114명이 예일대, 코넬대, 펜실베이니아주립대 등 65개 대학에 들어갔어요"라고 밝혔다.

입학하기는 까다로운 편.

주로 7학년과 9학년에서 신입생을 뽑지만 원하는 학생이 있으면 언제든지 입학사정을 하므로 시기를 맞추는게 힘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원서, 이전에 다니던 학교 성적증명서, 교사 2명의 보증서 등을 제출한 뒤 따로 면접 및 필기고사를 치러야 돼 웬만한 대학입학만큼 힘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李相勳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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