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망언 日 각료가 아우

입력 1999-03-18 14:29:00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명신이었던 안자(晏子)는 경공(景公)에게 치국(治國)의 대본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무릇 나라에는 세가지의 불길(不吉)한 일이 있습니다. 그 첫째는 나라안에 현자(賢者)가 있음에도 군주가 그 것을 모르는 것이요. 알고도 그들을 불러 쓰지 않음이 그 두번째요. 그들을 불러 쓰더라도 전폭적으로 신임하지 않는 것이 그 세번째입니다"

◈협상이 뭔지나 아는지

예나 지금이나 용인(用人)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일본의 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 농수산상을 아우로 뒀다는 김선길(金善吉) 해양수산부장관의 역량과 국량(局量)을 온 국민이 이젠 볼만큼 본 것 같다.

주부들은 깎인 월급으로도 그나마 싸고 오래 먹을 수 있었던 간고등어 한 손을 큰 부담없이 쥐어보기를 포기한지 이미 오래 전이고 도시봉급생활자들이 퇴근후 식당의 조리대앞에 쪼그리고 앉아 생선회 몇점 더 맛보기도 이젠 포기했다.

가장들의 각오와 주부들의 맵짜한 마음씀씀이가 이런 판에 장관이 국회에서 파안대소를 한들 무슨 대수리요. '널푼수' 차원에선 설왕설래되겠지만 적어도 본질 문제는 아니기에 이쯤해서 접을 뿐.

그러나 협상의 상대역인 나카가와 농수산상에 대한 그의 인식부분에 이르러서는 매운 고추를 통째 삼킨 것처럼 속이 아린다. 46세의 나카가와 농수산상은 북해도(北海道)11선거구 출신의원으로 농수성.정부차관을 역임한 전문인이다.

이 정도만 해도 출신지역(충북.충주)으로나 지나간 관료이력으로나 바다와는 글자 한자의 인연도 없는 한국의 김장관으로선 협상상대가 긴장의 대상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적을 모르고 나를 모르니

그가 나카가와 농수산상과 얼마나 두껍고 질긴 인연이 있길래 호형호재(呼兄呼弟)하는 사이라고 흰소리를 했는지 궁금하다.

그러나 나카가와 농수산상을 주목해야 할 심각한 이유는 다른 데도 있다.

그는 오부치(小淵)내각 발족직후인 지난해 7월31일, 한국의 종군위안부문제와 관련, 중대한 망언(妄言)을 한 전력이 있다.

"(종군위안부가)있었는지 없었는지 확실히 말할 수 없다. 역사적 사실로 교과서에 게재하고 있는데 의문을 느낀다"고 내뱉은후 파문이 일자 발언을 취소한 것.

당시 아리마(有馬朗人)문부상은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는 국가와 정부로서 동의하는 일"이라고 언급했다. 오죽했으면 유력지 아사히(朝日)신문조차 "그의 발언은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한 93년8월의 일본정부 공식담화에 대한 도전"으로 비판했을까.

동경의 재판소앞에 까지 가서 겹겹이 쌓인 자신의 한(恨)과 욕(辱)에 전율하는 장본인들과 그들을 낳게 한 조국을 일언지하에 묵살해버린 협상상대와 형이야, 아우야 한다면 우리 장관의 정체성은 무엇이란 말인가.

17일에도 서울 일본대사관앞에서는 이들의 피맺힌 함성이 울렸다. 황당한 심사에 가슴이 떨리고 주부들은 비싼 생선값에 손이 떨리는 요즘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들이 많지만 최소한의 의무중 하나는 4천500만 모두에게 주권국민으로서 최소한의 자긍심을 심어주는 일일 것이다.

한.일어협의 추가협상 결과는 실속없는 숫자놀음으로 일관한 것 뿐이었다. 쌍끌이 80척을 얻고 복어.백조기황금어장을 내 준 것은 어떻게 설명할까. '아우님'에게 체면 불고하고 사정끝에 얻어온 것이 이것이다. 그리고도 정작 본인은 "우리의 조건을 충족시킨 만족스런 결과"라고 말했다.

◈'조삼모사'가 따로없다

일본의 어민단체들이 그의 일본도착에 맞춰 "개인간의 약속도 아니고 국가간에 도장까지 찍은 협상을 다시 하자니 무슨 소린가?"라고 말했다. 독립주권국의 각료가 이웃나라 어부들에게 이런 소리를 들어도 되는지 국민들의 얼굴이 달아 오른다. 곧 물러날 장관이 한 일이기에 더 이상 거론하기가 부자연스럽다.

그러나 꼭 짚고 넘어갈 일은 있다. 해양수산부에 수산전문가가 고작 3명뿐이란 사실에 국민들은 혀를 차고 있다. 그리고 해양수산부가 동.서.남쪽 어느 해안도 아닌 서울, 그것도 강남구 역삼동의 황금싸라기 빌딩에 있어야 할 이유를 어민들은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인력조정과 함께 청사조정도 시급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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