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보면 18년전 어린딸 둘을 데리고 갑자기 혼잣몸이 돼버려 눈물겹던 그 시절조차 아름답게 여겨져요. 딸들과 헤어지지 않기 위해 집에서 18시간 이상씩 홀치기를 했어요. 밤낮 주야로 홀치기를 해대니 손가락에 깊숙한 홈이 패였어요. 먹고 살기에 고단했지만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시절이었지요"
50대 주부 이태선(李太先·52)씨는 대구시 달서구 월성동의 임대아파트에서 가난하게 산다.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부자인 그를 보면 행복이 결코 물질에 좌우되지 않는 어떤 희망을 발견한다.
"말못하는 짐승들도 제 새끼를 감싸고 보호하는데 자녀들을 팽개치는 부모, 길거리를 배회하는 청소년들을 보면 이해가 안돼요"
하루에 18시간씩 홀치기를 해서 겨우 끼니를 때우는 궁핍함 속에서도 길에서 노는 이웃아이들을 집에 데려와 밥을 먹이고 씻겨주던 이씨.
"사람은 아무리 어려워도 근본을 잃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형제도 없고, 가까운 친척도 없이 홀몸이 된 이씨는 이웃과 두 딸을 기둥삼아 세파와 맞서나갔다.
"아버지 없이 자라도 공부 잘하고 순한 딸들이 있어 결코 빗나갈 수 없었지요. 그저 딸들의 인생에 밑거름이 된다는 일념뿐이었어요. 졸업한 두딸이 어려운 IMF에도 불구하고 300대 1의 경쟁을 뚫고 거뜬히 취업이 됐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어머니의 외로운 인생길 친구가 되어준 두딸 이동연(23), 동주(20)는 요즘도 직장이 파하면 엄마가 일하는 편의점내 김밥코너로 달려간다. 야참객들에게 김밥을 파는 어머니의 일손을 덜어주면서 세 모녀의 정은 깊어만간다.
이씨가 김밥집에서 일하게 된 것은 일하던 장애자 시설이 구조조정을 했기 때문. 홀치기를 그만두고 장애자 시설에서 일하던 그는 그곳에서 인기캡이었다. 지난 설날 포항에 사는 장애아 영훈이는 어눌한 목소리로 "아주움마~ 보옥(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전화를 걸어와 이씨를 울렸다.
이씨는 두딸과 함께 노트와 연필을 챙겨서 영훈이집에 다녀왔다. 장애자와 서로 주고받는 가운데 사랑을 키워갔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지 이별이 찾아왔다. 장애자 시설이 구조조정을 하는 바람에 해고(?)당했던 것이다.
장애자들과 헤어져 허전해하던 그에게 김밥집 제의가 들어왔다. 이제 두딸과 함께 밤을 낮삼아 김밥을 싸는 이씨는 자신도 살기 힘겨운 영구임대아파트 이웃들과 함께 월성복지관 그린봉사단장을 맡고 있다.
헌옷가지를 모아서 판매, 수익금을 가지고 어려운 이들을 돕는 이씨는 어려운 가운데 스스로 살길을 찾아내는 '선행 대장'이다. 하지만 튀는 세대인 두딸은 주워서까지 남을 도우려는 엄마에게 불만을 털어놓는다. 엄마 또 뒤져? 한번만 더 물건을 주어오면 다신 안볼껴!
〈崔美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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