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비우기 위해 그림 그릴뿐

입력 1999-03-15 14:19:00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1세대, 원로 서양화가 박서보(68)씨가 12일 대구를 찾았다. 18일부터 시공갤러리와 신라갤러리 두 곳에서 함께 갖는 회고전 성격의 개인전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전시작품의 선정, 배치까지 손수 꼼꼼히 챙기는 모습속에서 반세기 가까운 세월동안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선두자리를 지키는 데 밑바탕이 된 투철한 작가정신을 읽을 수 있었다.

"나는 목탁을 두드리는 심정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한결같이 '묘법'에 천착해온 이유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나에게 그림의 주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스님이 하루종일 목탁을 두드리듯 선을 긋고 한지를 긁는 무의미한 반복적 행위속에 자신을 비우고 극기하기 위해 그림을 그릴뿐입니다"

요즘도 수첩을 가지고 다니며 작품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스케치하는 그가 후배들에게 주는 충고는 사뭇 엄숙하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일이었지만 내 경우 그림에게 구제해달라고 매달리며 하루 14시간씩 쉼없이 작업을 해왔습니다. 빠른 결과를 바라지 마십시오. 곁눈질하지 않고 한 길을 판다면 언젠가 미술에 의해 구제받을 것입니다"

경북 예천출생으로 홍익대 미술학부를 졸업한 박씨는 35년간 동대 교수로 재직했으며 97년 퇴임후 재단법인 서보미술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재임중이다.

〈金嘉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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