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병용을 반대한다
요즈음 정부에서는 국민의 여론을 수렴치 않은채 한자병용정책을 발표하였고 한글학회 등 어문관련단체에서는 이를 두고 찬반의 논란을 벌이느라고 온통 시끄럽다. 엊그제 어느 어문단체에서 필자에게 한자병용에 찬동하는 성명서를 낼 터이니 서명을 부탁한다는 요청을 해왔다. 필자는 단연코 거절하였다. 아마 필자가 한문원전을 해독할 줄 알고 한자학습서를 저술한 까닭으로 당연히 이를 찬성할 것으로 짐작하였을 것이다.
50년 해묵은 논쟁이 왜 다시 불거졌는가? 그 명분에 외국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안내판.도로표지판 같은 것에 한자를 병기한다는 것도 들어있었다.
한자와 한문은 삼국시대부터 수용하여 모든 공문서에 사용하여 왔다. 고유의 문자표현수단이 없었으니 당연한 수용이었다. 그래서 우리의 표현 또는 기록문화에 크게 공헌하였다. 그러나 그 구조가 고유의 언어와 달라 언어의 이중성을 드러냈다. 곧 한문은 주어 서술어 목적어의 순서로 이루어져 있으나 고유어는 주어 목적어 서술어 순서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따라서 말하기와 글쓰기가 달랐다. 우리말은 중국어와 달리 동아시아계통으로 만주어· 일본어와 같은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이두(吏讀)가 개발, 사용됐다. 한자단어를 빌려쓰면서 그 어순은 이두를 차용하여 우리말 어순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일본의 가나는 이두의 방식을 빌렸다.
한글의 창제는 바로 이두사용에서 한걸음 나아가 우리말 어순대로 문장을 만들거나 표기하는데 맞추어졌다. 세종은 어려운 한자표기와 한문문장을 타파하려고 맨먼저 조정의 실무자들에게 정음교육을 시켰고 민중이 직접 알아야할 재판문서나 방문에 사용케 하였다. 하지만 오래 한문교육을 받고 관습에 젖은 벼슬아치들은 정음의 사용을 거부했다. 여기에는 분명히 특권의식의 귀족취미도 있었다.
그후 한글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수백년동안 이어져 왔다. 19세기 이후 오늘날까지 한글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한자는 너무 오래 사용해온 탓으로 언어생활에서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국한문혼용의 시대를 거쳤다. 이 과정에서 하나의 모순이 일어났다. 처가(妻家)를 '처가집', 남발(濫發)을 '너무 남발', 공론(空論)을 '헛 공론'으로 말하는 따위이다.
이런 모순은 언어의 이중성에서 일어나는 자연현상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런 모순은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역사적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한자용어를 꾸준히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이다. 공헌을 '이바지', 본인을'이 사람'이라고 바꾸어 나가야한다.
한자와 한문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표의문자이나 그 획수는 너무 복잡하고 문장은 아주 어렵다. 중국에서는 간자(簡字)를 보급했으나 문맹률은 한국보다 훨씬 높다. 이는 교육의 탓만이 아니라 문자구조의 특징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이제 한자는 외국어처럼 받아들이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미래는 지식 정보화시대이다. 우리의 청소년들은 새로운 지식을 쌓아야 세계인의 대열에 처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시대에 큰 효용성도 없는 어려운 한자를 익히기 보다 한자용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과 사전같은 도구를 더 많이 계발하는 일이 더욱 시급하다. 자기의 이름을 한자로 쓸 줄 몰라도 된다. 상용한자로 지정한 1천800자만 가르쳐도 충분하다. 컴퓨터의 스펠링을 몰라도 무엇에 사용되는지 알고 있으며, 왜곡(歪曲)이란 한자를 몰라도 그 뜻은 알고 있다. 외국어 단어 찾듯 사전을 뒤지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꼭 이를 가르쳐야 바른 문자생활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고루한 논리이다.
한문으로 쓰여진 민족문화의 서적들은 전문가들이 번역하면 될 것이다.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서라면 경주같은 관광지 중심으로 병용하면 된다. 서울시의 이런 시도는 아주 바람직하다. 한자를 가르치는 시간에 다른 지식을 습득해야한다. 굳이 우긴다면 먼저 간자부터 계발해야한다. 지금 한자문화권에서 간자를 쓰지않는 나라는 우리뿐이다. 당국의 신중한 병용정책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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